KT 산악훈련, 죽음의 8.4km 속에 깃든 정신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1-08-14 15:49


KT 선수들이 산악 체력훈련 시작 전에 몸을 푼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때까지는 모두 쌩쌩한 모습이었다. 제공=KT

목표지점인 만항재에 도착한 KT 서유열 구단주대행(가운데)과 선수단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제공=KT

사장과 단장이 직접 참가한 가운데 함백산 산악 훈련을 하고 있는 KT 선수단. 맨 앞이 구단주 대행인 서유열 사장, 오른쪽 옆이 권사일 단장이다. 제공=KT

첩첩산중의 강원도를 실감케 하는 산.

태백의 함백산이다. 해발 1572.9m. 남한에서 여섯번째로 높은 함백산은 높고 험하지만 접근은 용이하다. 울창한 산 곳곳에 가르마가 나 있다. 아스팔트 도로가 산길에 깔려 차량이 오갈 수 있다.

그래서 이곳에는 국가 대표팀 훈련장이 있다. 산악 훈련하기 딱 좋은 코스다.

프로농구 정규시즌 디펜딩챔피언 KT 소닉붐 선수둘이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장소다. 지난 1일부터 이어진 2주간의 산악 체력훈련. 12일은 마지막 훈련날이었다. 선수단 차량보다 먼저 도착한 초입. 적지 않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 안개도 잔뜩 껴있었다. 혹시나 훈련 취소를 기대해봤으나 헛된 바람이었다. '호랑이 ' 전창진 감독이 이끄는 팀이다. 무조건 강행이란다. 마음을 다 잡았다.

어떤 길을 뛰게 될까 코스가 궁금했다. 그래서 미리 차를 타고 답사에 나섰다. 곱창처럼 구불구불 끊임없이 이어진 오르막 8.4km. 만항재란 고개가 목표 지점이다. 예상대로 가파르고 길다. 평소 몸관리를 하지 않았던 기자로선 벌써 기가 탁 질리고 만다. 2km쯤 차를 달리니 안갯속에서 송영진의 뒷모습이 보인다. "왜 벌써 왔느냐"며 소리를 치는 그는 지난 시즌 KT 우승의 공신이었다. 키와 몸무게가 더 큰 선수들을 전담마크하다 무릎 발목 등 성한데가 없다. 후배 선수들과 페이스를 맞출 수 없어 미리 출발했다. 2m7의 신인 센터 방덕원과 이상일의 모습도 보인다.

선수단 도착 소식에 차를 돌렸다. 10분 이상 몸을 푼 선수단은 전창진 감독의 박수 소리에 맞춰 우르르 뛰어나간다. 내리는 빗 속에 선수들 상당수는 상의를 벗은 채 우람한 몸매를 드러낸채 산악 러닝을 시작했다.

양우섭 윤여권 박성운이 선두 그룹, '토종 찰스 로드' 김현민, 박상오, 김도수, 성치 않은 부위가 많은 고참 표명일 조동현 등은 후방 그룹이다. 전창진 감독은 차를 타고 아래 위를 오가면서 선수들의 완주를 끊임 없이 독려한다. 4km 넘어 가파른 오르막길. 빗물인지 땀인지 모를 물로 범벅이된 선수들의 표정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박상오는 지난해 기절했던 경험이 있어 조심스럽다. 최고참 표명일은 "힘들지만 여러모로 참 많은 도움이 되는 훈련"이라고 설명한다.

얼마나 힘든지 궁금했다. 기자도 훈련에 직접 동참해 봤다. 처음부터 같이 뛰는건 무리. '민폐'를 끼칠 것 같아 4km 지점에 내렸다. 큰 숨 한번 내쉬고 천천히 뛰기 시작했음에도 약 500m를 넘자 숨이 가빠왔다. 빗줄기와 땀이 배출되며 내뿜는 열기에 안경이 희뿌옇게 변해 천지분간을 할 수 없었다. 1km쯤 부터 설상가상 경사가 급해졌다. 숨도 쉬기 힘들고 앞도 보이지 않는 고통의 순간. 제 정신이 아니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심장 보호가 우선이었다. 할 수 없이 걷기 시작했다. 걷기도 쉽지 않을 정도의 가파른 경사. 선수들이 헐떡이며 차례로 옆을 스쳐갔다. 부상 등 이유가 없는 선수들은 거의 멈추지 않고 뛰어서 8.4km의 산길을 종주해야 한다. 프로농구 선수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은 순간이었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가까스로 만항재에 도착했다.


숨을 고르던 중 놀라운 광경이 포착됐다. 안갯속에서 등장한 인물. 놀랍게도 구단주대행인 서유열 사장(55)이었다. '걸어서'가 아니라 '뛰어서' 들어오고 있었다. 단 한번도 안 쉬고 뛰어서 종주를 했단다. 지난해까지 각종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건각의 서 사장에게도 가파른 산길 종주는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가파른 오르막에서 뜀박질을 멈추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시즌 내내 쓰러질 때까지 뛰는 여러분들 앞에서 훈련에 딱 한번 참가한 사장이 멈춰서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함께 종주를 마치고 선수들에게 던진 이 한마디는 구단 사장의 의례적 한마디를 뛰어넘는 '공감'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화려하지 않은 전력으로 '뛰고 또 뛰어' 신화를 이뤄내고 있는 KT. 사령탑 전창진 감독은 동부 시절부터 '산악훈련'을 시행하며 일반화 시킨 장본인이다. 전 감독은 "산악훈련은 단순히 체력을 키우려는 훈련이 아니다. 실내 체력훈련과 곁들여 인내의 한계를 체험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스스로를 극복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태백=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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