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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철의 베이스볼 데자뷰 25] 한 경기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 87년 삼성의 교훈

기사입력 2011-06-26 15:01 | 최종수정 2011-06-26 15:01


김응용 감독과 박영길 감독은 오랜 친구 사이다.

고향은 다르지만 부산에서 같이 야구를 시작했고, 고등학교 때부터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면서 실업야구 시절까지 대표적인 홈런타자로 어깨를 겨뤘다.

지난 82년 프로가 탄생할 때 박영길 감독은 롯데 자이언츠 사령탑으로 출발했고, 김응용 감독은 미국에서 야구 유학중이었다. 그래서 김응용 감독은 한시즌 늦은 83년 해태 타이거즈 감독으로 취임하게된다. 비록 한시즌 늦게 감독을 맡았지만 김응용 감독은 약체로 평가되던 해태 타이거즈를 그해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이런 두 감독의 운명이 엇갈리는 사건이 87년 한국시리즈에서 벌어진다. 그때는 포스트시즌 제도가 지금보다 복잡했다. 전-후기 1, 2위팀끼리 플레이오프를 치러 여기서 이기는 팀들이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는 제도였는데 한 팀이 전-후기 모두 1위를 하면 자동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었다.

87년 박영길 감독이 이끈 삼성이 전-후기 모두 1위를 하면서 여유있게 한국시리즈에 먼저 올라갔다. 김응용 감독의 해태는 후기리그에서 2위를 하면서 전반기 2위 OB 베어스와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다. 그런데 엇갈린 운명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해태는 후기리그 역시 3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플레이오프도 하지 못하고 그해 시즌을 끝낼 뻔 했지만 전-후기 1위를 삼성이 한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삼성은 후기리그에서도 일찍 1위를 확정지으면서 한국시리즈 대비 모드로 들어갔다. 잔여 경기에 주전들을 쉬게 하고 백업을 기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후반기 2위 자리가 확정되지 않아 해태와 OB가 치열한 2위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해태는 남은 일정에 삼성전이 많아 다소 유리한 상황이었다. 해태가 후기리그 2위를 하지 못하면 플레이오프는 없어지고, OB가 전-후기 모두 2위를 하면서 한국시리즈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해태가 삼성과의 경기가 많은 이점을 잘 살려 극적으로 후기 2위를 차지하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을 놓고 전반기 2위 OB와 플레이오프를 하게 됐다.

해태는 정규시즌 내내 OB에 열세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투수진의 우위를 앞세워 승리하고 한국시리즈에 가게 된다. 해태는 이어 한국시리즈에서 먼저 올라가 기다리던 삼성을 4승무패로 셧아웃시키고 완승을 거뒀다.


그때 정규시즌 잔여경기에서 삼성이 백업 대신 베스트 멤버를 기용했더라면 해태는 한국시리즈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한국시리즈 4연패라는 대기록도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해 한국시리즈를 계기로 김응용 감독은 승승장구했고, 패장의 멍에를 쓴 박영길 감독은 쓸쓸히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박영길 감독으로서는 아쉬움이 정말 많은 한국시리즈가 됐을 것이다.

이런 과거의 역사를 잘 알기 때문일까. 요즘 프로야구 감독들을 보면 독하다 싶을 정도로 냉정하게 경기를 운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야구는 워낙 변수가 많아서 조금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현장에 있을 때 소신있게 후회 없는 경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냉정한 승부사적 기질로 해태의 한국시리즈 4연패 기록을 넘어 한국시리즈 5~6연패라는 대기록도 만들어 줬으면 한다. MBC스포츠+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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