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민경 기자] "그때는 1, 3라운드를 원했었어요."
심재학 KIA 타이거즈 단장은 올 시즌 도중 키움 히어로즈와 투수 조상우(30) 트레이드를 추진하던 때를 되돌아봤다.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앞두고 조상우는 최고 매물로 떠오른 상태였다. KIA를 포함해 몇몇 구단이 키움에 영입 문의를 했는데, 고심 끝에 줄줄이 포기했다. 키움은 2025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무조건 포함하길 원했고, 한참을 계산기만 두드리던 구단들은 끝내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KIA는 시즌을 마치고 다시 한번 조상우 트레이드를 추진했다. 내부 FA 장현식(29)을 LG 트윈스에 뺏긴 뒤 본격적으로 장현식 협상에 불이 붙었다. KIA로선 장현식이 팀의 핵심 불펜이었기에 전력 보강이 불가피했다. FA 시장에서는 마땅한 선수가 보이지 않았고, 트레이드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최고 매물 조상우 영입을 두고 키움과 다시 협상을 시작했다.
심 단장은 지난 13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1시간 앞두고 고형욱 키움 단장에게 만나자고 연락했다. 이 자리에서 조상우 트레이드를 제안했고, 고 단장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난 16일과 17일 실행위원회에서 다시 만난 두 단장은 빠르게 협상을 매듭지었다. 그리고 19일 KIA가 키움에 현금 10억원과 2026년 신인 1라운드, 4라운드 지명권을 내주고 조상우를 받는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심 단장은 원했던 전력을 보강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그는 "일단 우리가 불펜 영입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감독님께서 계속 이야기해 주셨다. 우리도 장현식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꿔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그런 공감대가 현장에서 형성됐다.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처음 트레이드 이야기를 꺼냈고, 그리고 얼마 전에 단장들 모였을 때 거기서도 이야기가 좀 진전이 됐다"고 설명했다.
왜 KIA는 이번에는 키움의 신인 1라운드 지명권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을까. 심 단장은 "시즌 때는 키움이 1, 3라운드를 원했다. 그때 지명권과 지금 지명권의 가치는 조금 다르다. 그러니까 그때는 우리가 1라운드 5순위로 뽑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내년에는 우리가 (우승해서) 1라운드 10번째다. 1, 4라운드면 10번째와 40번째 선수다. 그래서 스카우트팀과 데이터팀이 같이 시뮬레이션을 돌렸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 스카우트 파트에서 10번째하고 40번째, 40명 후보군에서 우리가 데려올 수 있는 선수가 누가 있는지 다 돌려봤다. 스카우트팀에서는 (트레이드를) 한번 해볼 값어치는 있다고 했다. 그 정도에서 잡을 수 있는 선수는 (지금 팀에 있는) 우리 선수로도 가능하고, 데이터 팀에서도 해볼 필요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KIA는 올해 통합 우승을 차지했지만, 다음 시즌이 우승에 올인할 수 있는 마지막 적기라고 냉정히 판단했다. 최형우(41) 양현종(36) 나성범(35) 등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를 무시할 수는 없다.
심 단장은 "어떻게 보면 (최)형우와 계약이 내년까지다. (양)현종이도 이제 나이가 있고, (나)성범이도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가는 상황에서 우리의 최대 전력은 내년까지가 아닐지 냉정히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과감하게 움직였다"고 강조했다.
키움은 또 한번 배짱 장사에 성공했다. 키움은 트레이드 시 구단이 다음 연도 지명권을 선수와 교활할 수 있도록 허용한 규약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구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4년 신인드래프트에서는 1, 2, 3라운드 지명권을 모두 2장씩 확보해 눈길을 끌었고, 2025년 신인드래프트 역시 1라운드 2장, 3라운드 3장을 확보하면서 원석 뽑기에 열을 올렸다.
2024년 신인 1라운드 지명권은 LG에서 받았다. 키움은 LG에 주축 선발투수 최원태(27, 현 삼성 라이온즈)를 내주면서 1라운드 지명권과 함께 유망주 이주형(23) 김동규(20)를 받았다. 육성에 무게를 둔 선택이었다. 2라운드 지명권은 KIA에 받았다. 포수 주효상(27)을 내주면서 다른 조건 없이 2라운드 지명권만 받았다.
2025년 신인 1라운드 지명권은 NC 다이노스가 내줬다. 내야수 보강이 절실했던 NC는 지난 5월 키움으로부터 김휘집(22)을 받고, 1라운드와 3라운드 지명권을 내줬다. 만약 KIA가 이 시기에 조상우 트레이드에 합의하면서 1, 3라운드 지명권을 줬다면, 키움은 1라운드 지명권 3장, 3라운드 지명권 4장을 독식할 수 있었다.
키움은 다시 트레이드의 문이 열렸을 때 '조상우를 원하면 신인 1라운드 지명권을 내줘야 한다'는 기조를 유지했고, 일찍이 2026년 신인드래프트 상위권 유망주를 다수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키움이 최근 신인드래프트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키움 팬들은 반복되는 주축 선수들의 유출에 단단히 뿔이 났다. 선수가 팀에서 어느 정도 주축으로 성장해 리그에서 활약한다 싶으면 다른 팀으로 유니폼을 바꿔 입으니 육성이 아무리 뛰어나고 미래가 밝아도 당장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키움은 지금 기조를 바꿀 생각은 없다. 고 단장은 스포츠조선에 "키움을 리빌딩 과정에 있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리빌딩이 힘들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되면 1라운드 1순위와 1라운드 10순위, 2라운드 1순위를 다 뽑는 장점이 있다. 드래프트를 해보니까 10, 11번째를 연속해서 뽑는 게 상당한 의미라고 판단했다"며 이번 트레이드에 만족감을 보였다.
김민경 기자 rina113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