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나는 은퇴하는 날까지 계속 도전할 것이다."
'여자축구 캡틴'이자 '인천 현대제철 레전드' 김혜리가 서른넷의 나이에 한국 여자축구 최초로 중국리그에 도전한다. 김혜리는 A대표팀 스페인 원정 직후인 12월 초 중국 여자슈퍼리그 우한 징다 구단을 찾아 메디컬테스트를 마치고 9일 귀국했다. 내년 1월1일부터 1+1년 계약을 맺었다. 중국 여자국가대표 코치 출신인 창 웨이웨이 감독과의 면담, 직원들의 환대 속에 우한 구단의 진심을 확인했다. 우한 징다는 10월 9일 여자 아시아챔피언스리그(WACL) 인천 현대제철전(0대2패) 이후 김혜리를 향해 러브콜을 보냈다. 현대제철과의 1년 계약이 남아 있던 김혜리는 고심 끝에 시즌 종료 후 구단과 상의했다. 2014년부터 11시즌간 10번의 우승컵을 들어올린 '현역 레전드'에게 인천 현대제철이 대승적 차원에서 이적을 허하면서 전격적으로 중국행이 성사됐다. 현대제철은 "10여 년간 팀을 위해 헌신해온 김혜리 선수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이적을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우한 징다 역시 구단 역사상 유례 없는 이적료를 현대제철에 제시했고, 김혜리에게도 구단 최고 연봉과 함께 등번호 20번을 약속했다. 구단 식당에 김치를 구비하고, 24시간 한국어 통역 스태프를 붙이는 등 '대한민국 캡틴' 영접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김혜리의 축구 여정은 곧 대한민국 여자축구의 역사다. 2010년 '절친' 지소연과 함께 20세 이하 월드컵 3위를 이끌었고, 2015년 캐나다, 2019년 프랑스, 2023년 호주-뉴질랜드 등 3차례 월드컵에 모두 주전으로 나섰으며, 콜린 벨 감독의 절대 신임 속에 주장 완장을 찼다. 센터백, 풀백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A매치 128경기(1골)에서 투혼 수비를 이끌었다. 한결같이 당당하고 단단한 선수다. '1강' 인천 현대제철의 10회 우승을 이끈 클럽 레전드이자 올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여자선수상 후보이기도 한 김혜리는 30대 중반에 당찬 도전을 택했다. 김혜리는 "우한에서 처음 연락이 왔을 때 계약기간도 남았고, 공식 오퍼도 와야 해 '관심 정도'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진행이 빨리 됐다"고 했다. 이적을 결심한 후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진작 나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지난 10여년 간 수차례 기회가 왔었다. 현대제철에 대한 진심, 지도자들의 만류로 수차례 마음을 접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지)소연이도 '가야 한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11년간 현대제철이라는 팀에 있으면서 많은 걸 배우고 얻었다. 이젠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적 배경을 밝혔다. "얼마 남지 않은 축구인생에서 기회가 안 올 수도 있고 이번엔 나만 생각해도 좋겠다는 생각에 도전을 결심했다"고 했다.
김혜리는 계약 기간이 남았음에도 대승적 결정을 해준 인천제철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구단에서 대승적인 차원에서 응원한다며 보내주기로 결정해주셨다. 현대제철은 내가 청춘을 바친 팀이고, 집같은 곳이다. 어디서 뛰든 현대제철을 응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제철 사직서를 쓰기 전까지도 실감이 안나더라. 써지지가 않더라. 여러 감정이 겹치더라"며 현대제철을 향한 마음을 전했다. 시즌 후 이적이 결정되면서 정든 팬들과 인사를 못하고 떠나는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비시즌이나 휴가 때 팬들에게 인사하러 오고 싶다. 그런 기회가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혜리는 "이제 축구를 한 날보다 할 날이 적다. 안정보다 경쟁과 변화 속에 좀더 발전하기 위한 길을 선택했다. 원래 도전을 피하는 성격도 아니다"라고 했다. "무엇보다 저를 원하는 팀으로 이적할 수 있다는 점이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중국이 유럽같은 빅리그는 아니지만 날 원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대표팀서 오래 지켜보신 감독님이 '축구에 대한 퀄리티가 다른 선수'라면서 '진짜 올 줄 몰랐다. 정말 고맙다'며 반겨주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우한은 중국 여자슈퍼리그 1위팀이다. 내년 ACL도 나가고 중국 국가대표도 4~5명 있는 팀"이라고 소개했다. 캡틴 김혜리를 유독 아꼈던 콜린 벨 전 대표팀 감독이 중국 여자축구 20세 이하 감독으로 부임한 상황. "감독님과 통화했다. 잘됐다면서 도전을 축하해주셨다"고 했다.
한국 여자축구의 길을 열어온 김혜리는 도전을 멈추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나는 은퇴하는 날까지 계속 도전할 것이다. 좋은 폼을 계속 유지하면서 은퇴하고 싶다. WK리그에서 14년을 뛰었다. 어쩌면 편하게 축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중국리그라는 새 도전을 통해 더 발전하고 싶다. 내가 열심히 해야 후배들도, 또다른 선수들도 도전을 이어갈 수 있다는 책임감으로, 가지 않은 길을 연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매순간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