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새해, 대한민국은 노인 1000만 시대,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다. 단순한 생명 연장이 아닌 삶의 질이 화두인 시대, '8899(88하게 99세까지)'한 노년의 필수요소는 바로 근력. 근육량은 보통 30대 중반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60대가 되면 30%, 80대가 되면 무려 50%까지 급감한다. 몸 건강, 정신 건강과 직결되는 '근력'에 대한 투자는 행복한 노년을 위한 최고의 재테크다. 대한체육회는 올해 19개 종목 620개소, 17개 시도 220개소에서 60세 이상 국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어르신 생활체육교실 및 페스티벌' '어르신 체조교실'을 운영했다. 2024년 한해가 저물어가는 시점, 오늘도 '근테크(근육+재테크)'에 진심인 '근부자' 시니어들의 운동법을 소개한다.
[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머리! 머리! 머리!" 지난달 27일 오전 10시 부천 소사노인복지관 '어르신 검도교실', 눈길을 뚫고 달려온 7080 회원들의 기합 소리가 우렁찼다. 첫눈이 펑펑 쏟아진 이날, '취재가 될까'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17명의 회원이 일사불란하게 도열, 저마다 목검을 든 채 '검도 3단' 오영철 회장의 리드에 따라 스트레칭, 기본기 훈련에 집중했다. 10분 휴식 후 전원이 함께 하는 일자진 수련, 선도와 후도가 합을 맞추는 기술 훈련이 이어졌다. 대한체육회 '어르신 생활체육 교실' 중 하나인 대한검도회 '어르신 검도교실'은 올해 60세 이상 시니어 620명을 대상으로 전국 30개소에서 주 1~3회 운영됐다. 이항수 사범(53)이 10년째 운영하는 검도교실은 모범적인 '시니어 맞춤형' 수업으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수요일 검도교실의 조기 마감은 기본, '1시간 수업을 2시간으로 늘려달라' '수강인원을 더 늘려달라'는 요청이 쇄도한다.
1995년 전국체전 금메달리스트인 이 사범은 부천시청 실업팀 은퇴 후 지역 도장(소사관)을 운영하고, 경기도검도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중 2015년 무료 시니어 검도교실을 시작했다. 소사노인복지관의 태극권 교실 장소가 없다고 해 도장을 무료 대여해주면서 '어르신'들과 가까워졌고, 일찍 여읜 아버지 생각에 검도 나눔을 결심, 2017년부터 소사복지관에 정식수업이 개설됐다. 대한체육회 '어르신 생활체육' 사업에 검도가 선정되면서 목검, 죽도, 강사비를 지원받게 됐고, 이 사범과 회원들의 진심이 통한 '시니어 검도'는 소사노인복지관의 인기 강의로 자리잡았다. 대한체육회와 대한검도회가 개최하는 어르신 검도 페스티벌에 매년 출전해 메달권을 놓치지 않는다. 올해도 단체전 3위를 했다. 2017년, 90대 유순금 회원은 최고령 출전상을 받기도 했다. 검도로 근력, 활력을 유지하는 '액티브 시니어'들은 '어르신' 호칭을 싫어한다. 이 사범은 "그냥 회원님이라고 부른다"며 웃었다. "단이나 메달과 무관하게 검도 그 자체에 진심인 분들"이라고 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출석률 100%, 1시간 수업 내내 회원들의 기합 소리엔 기운이 넘쳤다.
검도 수련 25년째인 오영철 회장(65)은 "회원중 최고령이 85세다. 시니어 검도는 과격하지 않다. 몸에 맞춰 하기 때문에 더 좋다"고 했다. "은퇴 후 금연지도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정신력도 좋아지고 체력에 큰 도움이 된다"고 소개했다.
고려대 생명공학과 교수 출신으로 유튜브 건강 채널을 운영중인 조호래 회원(68)은 1년 전 연구실 인근 소사복지관에서 첫 검을 잡았다. "검도는 나이가 들면서 필요한 근력, 균형감각, 무엇보다 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면서 "현대사회는 스트레스에 의한 암, 정신질환이 많은데 기합을 넣고 타격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풀린다"고 효능을 설파했다. 조 교수가 검도교실 단톡방에 수시로 올리는 건강 정보도 인기다. 그는 "21세기 키워드는 '맞춤형'이다. 내게 검도가 맞듯이 개인별 맞춤형 운동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정선 회원(71)은 30대 후반 이 사범에게 검도를 잠시 배웠다가 은퇴 후 재회했다. "나이에 맞는 검도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는 그녀는 "매주 수요일을 기다린다. 기분 전환도 되고 소화도 잘되고 관절도 좋아진다. 허리 통증도 사라졌다"면서 "시니어 프로그램은 강도를 조절하기 때문에 무리가 없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10년 만에 다시 검을 잡았다는 최명숙 회원(74) 역시 "심장수술 후 일어서지도 못했는데 운동을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회원들 모두 허리가 꼿꼿하지 않냐"더니 이내 홍보대사를 자청했다. "여러분, 건강에도 좋고, 자세에도 좋은 검도교실로 오세요!"
이 사범은 "검도에 나이는 없다. 유치원생과 80대가 대련할 수 있는 유일한 종목이자 온가족, 전세대가 함께 배울 수 있는 종목"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범의 아내와 용인대 출신의 두 아들도 검도인이다. 그는 "검도는 무도이자 스포츠다. 청년 시절 격렬한 검도도 매력적이지만 노년의 부드러운 검도도 충분히 매력 있다"고 했다. 시니어 맞춤형 검도 프로그램에 대한 호응에 대해 "반복훈련을 통해 몸과 마음이 맑아진다. 복잡한 동작을 몸으로 외우면서 집중력이 생기고 치매 예방도 된다. '코어'를 세우면서 어깨가 펴지고 허리 통증도 나아진다"고 설명했다. "유연성, 자세 교정에 도움이 된다. 죽도로 타격대를 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온-오프라인으로 소통하면서 건강 정보도 나누고 네트워킹도 하면서 즐겁게 지내신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부모님같은 회원들이 검도를 통해 건강과 활력을 되찾는 모습이 뿌듯하다"는 이 사범은 "회원들을 중심으로 지역 시니어검도회도 만들고 싶다. 이 분들의 길이 우리의 미래다. 초고령 사회에서 정부와 대한체육회의 시니어 맞춤형 지원이 더 늘어나고, 더 많은 분들이 '평생 스포츠'인 검도를 배우고 즐기시면 좋겠다"고 바랐다. 부천=전영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