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
영국 역사학자가 해부한 '노스탤지어'의 역사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예부터 스위스는 맑은 공기와 알프스, 그리고 용병으로 유명했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스위스 용병들 사이에선 금지된 노래가 있었다. 알프스 목동이 가축을 몰거나 우유를 짤 때 뿔피리로 연주하던 '퀴헤라이엔'이란 제목의 노래였다. 이 노래를 들은 용병들은 탈영을 시도했고, 누군가는 고향을 그리며 숨지기도 했다. 타국에 간 스위스 사람들은 고향의 맑은 공기에 익숙한 나머지 다른 나라에선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독일 의사 요하네스 호퍼는 1688년 이 병을 '노스탤지어'라 명명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가 쓴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어크로스)는 노스탤지어의 역사를 밝힌 인문서다. 질병의 한 종류에서 시작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의미망을 넓혀간 단어 노스탤지어의 변천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책에 따르면 스위스에서 시작한 노스탤지어라는 질병은 곧 미국, 중남미, 프랑스 등 서구 열강과 식민지로 퍼져나갔다. 특히 서아프리카인들이 이 병에 시달렸다. 노예무역의 희생자가 되면서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서아프리카인 약 1천200만명이 강제로 대서양을 건넜다. 그 과정에서 150만명이 사망했다. 노예선은 "물 위에 떠 있는 관"이라 불렸다. 일부 노예들은 고향을 그리며 단체로 "서로 팔을 단단히 엮은 채" 바다로 뛰어들었다. 무사히 대양을 건넌 사람이라도 노스탤지어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그들은 발열, 통증, 무기력으로 괴로워했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고향 땅을 애타게 그리워했다는 것이다."
노스탤지어는 이처럼 인종주의와 결합하면서 제국주의 압제를 상징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노스탤지어는 전쟁에 나간 병사들이 고향을 그리며 앓은 '향수병'을 지칭하기도 했다. 미국 남북전쟁 기간에 군인들 사이에선 노스탤지어가 만연했다. 전쟁이 발발하고 2년 동안 2천588명이 노스탤지어 진단을 받았고, 그중 13명이 사망했다.
한동안 잊힌 노스탤지어가 다시 주목받은 건 그로부터 100여년 후인 1970년대였다. 이번엔 자본주의와 결탁했다. 불황이 이어지자 '호시절'을 연상시키는 노스탤지어가 각종 광고 상품에 등장했다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로 유명한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광고 '자전거'(1973)는 집에서 손수 빵을 굽고, 배달은 자전거로 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며 주목받았다. 제빵기업 호비스가 공개한 이 광고는 옛 정서를 자극해 당대 많은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여전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자전거'는 2019년 1천200명이 참여한 조사에서 영국에서 "가장 훈훈하고 상징적인 광고"로 선정되기도 했다.
노스탤지어에 기댄 복고주의는 식품뿐 아니라 팝,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에 급격히 침투했다. 가령, 해변의 낭만을 노래한 비치보이스는 1960년대 인기를 끌었는데, 1970년대 노래를 거의 발표하지 않았어도 인기를 누렸다. 그들의 노래가 풍요롭고, 여유롭던 시절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1970년대에는 1920년대 재즈가 유행했고, '스팅' '추억' 등 복고적인 영화들이 주목받았으며, 1920년대 개츠비 스타일 패션이 인기를 끌었다. 1970년 미국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요즘은 노스탤지어가 큰돈이 되는 사업"이라고 보도했다.
불황과 실업, 정부지출 축소, 오일 파동이 촉발한 불경기와 성·인종 평등을 추구한 1960년대의 잇따른 개혁 조처와 혁명에 대한 피로감이 노스탤지어 콘텐츠의 인기로 이어진 것이다.
노스탤지어의 인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동력이 되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 문제까지 야기했다. 히틀러에 대한 찬양 등 극우 세력이 준동하는 밑거름이 됐다는 점에서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선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찬양하는 영화와 책들이 잇달아 소개됐다. 이들 작품에는 신나치들이 내세우는 논지와 홀로코스트 부정으로 꽉 차 있었다. 1970년대 나치 노스탤지어 붐은 테러 활동 증가로 이어졌다. 독일에서 우파 극단주의 단체에 대한 범죄 수사는 1976년 80건에서 1977년 300건으로 3.75배 증가했다.
극우뿐 아니라 우파도 좌파도 노스탤지어 감성을 정치에 활용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란 표어를 내걸었는데, 이는 레이건 전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를 재활용한 것이다. 또한 레이건의 표어도 역사를 추적해보면 1959년 영국 보수당이 그해 10월 치른 선거 표어 '영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Britain Great Again)에서 비롯했다. 모두 '좋았던 시절'을 상기시키는 노스탤지어에 호소한 표어다.
좌파들도 노스탤지어에 함몰했다. 레닌을 포함해 많은 혁명가는 노동자와 중산층이 동참한 인민의회인 '파리 코뮌'(1871)을 기렸다. 레닌이 죽었을 때, 시신을 감싼 것도 파리 코뮌 깃발이었다. 마오쩌둥도 문화대혁명을 파리코뮌에 빗댔다. 저자는 "노스탤지어는 사실상 정치적 엔진"이라고 말한다.
노스탤지어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 나온 것처럼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일부다. 그러나 지나치게 노스탤지어에 빠지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을뿐더러 인류 발전에도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는 점에서다. 무엇보다 우리를 구체적 실체가 아닌 환상의 세계 속으로 내몰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위험하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노스탤지어는 결코 존재한 적 없는 순수하고 즐거웠던 황금시대에 대한 일종의 갈망이었다."
손성화 옮김. 4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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