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왜 홍명보가 욕을 먹는 거야?" '스포츠 인사'의 특수성, 국민정서와 충돌하다

by

[스포츠조선 한동훈 기자] '스포츠적 관례'가 국민정서와 충돌했다. 감독 선임 문제가 국회까지 끌려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공직 인사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다른 현실에 많은 이들이 놀란 모양이다. '축구는(혹은 다른 모든 종목에도 해당) 원래 그래'라고 넘어가기에는 일이 너무 커졌다. 하지만 '스포츠적 관례'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이 관례가 지금 일회성 분노를 촉발한 것인지, 뿌리채 뜯어 고쳐야 할 시대적 요구를 맞이한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

24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에서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위원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게 질의하며 '채점표'가 있느냐고 물었다. 강유정 위원은 "최종 후보 3인에 대한 채점 결과가 있는가. 이것만 제출하고 설명하면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아도 됐을텐데 많은 팬들이 이 때문에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동네 계모임이나 동아리만도 못하다"고 비판했다.

매우 상식적인 지적이다. 다만 축구를 포함한 모든 프로스포츠 관계자들은 아차 싶을 만하다. 대부분의 감독이나 선수 영입은 공개경쟁채용 형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문가들을 선별해 위원회를 구성한 뒤 회의를 거쳐 후보를 추린다. 우리 팀에 적합한 인물을 찾아서 모셔오는 시스템에 가깝다. 회사에서 신입사원 뽑듯이 지원자를 평가해 채점할 일은 흔치 않다.

여기서부터 '불공정'으로 보이는 모든 오해가 발생한다. 우리 팀에 오고 싶은 인물과 우리 팀이 모시고 싶은 사람은 다를 수 있다. 우리 팀에 오고자 하는 인물은 까다롭게 평가하고 우리 팀이 영입하려는 인물은 빨리 접촉해서 의사부터 타진하는 것이 당연스럽게 여겨졌다. 과거에는 경쟁이 치열한 선수나 감독을 영입하기 위해 집앞에서 기다리거나, 공항에서 잠복했다가 미팅해 도장까지 찍는 일련의 과정을 '007 작전을 방불케 했다'며 극적인 스토리로 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빵집 접촉과 프레젠테이션 생략은 특혜로 비추어지고 있다.

또한 채점표가 정말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선수 보호 차원'에서 비공개가 예의로 받아들여졌다. '왜 사람을 뽑았는지'를 설명해왔지 '왜 이 사람이 탈락했는지'를 밝히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객관적인 커리어나 능력치는 A가 앞서는데 우리 팀과 조화나 현시점의 기세는 B가 낫다고 보여질 때 이를 어떤 기준으로 점수화할 것인지 애매하다. 이외에 사생활이나 인격적인 이유로 탈락 근거를 비밀에 부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대한축구협회가 왜 구체적인 모든 걸 오픈할 수 없는지, 동시에 감독 선임 절차에 위법이 없었다고 자신하고 있는지 이해 가능하다.

그러나 '해왔던 대로' 또한 늘 정답일 수는 없다. 축구에 별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 조차도 "왜 홍명보가 욕을 먹는 거야?"라고 물을 정도로 전 국민적 관심사다. 당연시 여겨졌던 스포츠적 관행이 과연 구시대적 악습으로 전락한 것인지 객관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아무리 스포츠여도 이제는 모든 것을 투명하고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도래한 것인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대표팀이니까 일반 클럽과 차별을 둬야 한다면 전 종목 대표팀 감독 선발 과정을 들여다봐야 할 것인지, 인기종목이라서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인기종목인지 구분도 해야 한다. 국민들의 요구라며 국회, 문체부까지 나서 전문가들의 영역인 A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의 채점표까지 공개하자는 게 올바른 프로세스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다수가 인정하는 투명한 절차를 거쳐 접촉한 제시 마시 감독은 최종 결렬됐다. 진통 끝에 선임한 홍명보 감독은 비판의 대상이다. 만약 둘의 결과가 달랐다면 어땠을까. '007 작전'으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했어도 여론이 같았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2018년 프로야구도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발 과정이 불투명하다며 국회로 불려가 된통 혼이 났다. 6년이 흐른 지금 이 사건은 희대의 촌극으로 기억되며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났다. 축구가 과연 시대적 과제를 눈앞에 둔 것인지, 소나기를 마주친 것인지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한동훈 기자 dh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