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경기는 그 자체로 경기여야 한다.
'김민재 야유 논란'이 거세다. 사건은 이렇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A대표팀은 5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팔레스타인과의 2026년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B조 1차전에서 0대0으로 비겼다. 졸전이었다. 팔레스타인전은 북중미행을 향한 여정의 시작이자, 홍명보 감독의 '두번째' 데뷔전이었다. 실망스러운 경기에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선임부터 온갖 '잡음'이 이어졌다. 매끄럼지 않은 선임 과정에, 홍 감독의 거짓말 논란까지, 여기에 전력강화위원이었던 박주호의 내부 폭로에 이어 박지성, 이영표 등 '레전드' 출신들의 쓴소리까지 나왔다. 결국 경기장에서도 이같은 분위기는 이어졌다. 붉은악마 자리에는 '안티 분위기'가 들끓었다. 이미 붉은악마를 상징하는 걸개가 거꾸로 걸렸다. '한국 축구의 암흑 시대', '피노키홍', '축협 느그들 참 싫다', '선수는 1류, 회장은=?!' 등의 플래카드가 관중석 곳곳에 놓였다.
국가 연주가 끝난 뒤에는 "정몽규 나가", 이른바 '안티 콜'이 울려 퍼졌다. 홍명보 감독이 대형 전광판에 등장할 때마다 야유가 나왔다. 선수들의 얼굴이 비췄을때 나온 어마어마한 함성과 대조를 이뤘다. 야유와 함성이 뒤섞인 어수선한 분위기 속, 최악의 결과까지 나왔다. 경기 후 야유는 더욱 커졌다.
그런데 이때 수비수 김민재(바이에른 뮌헨)가 응원석을 향해 걸어갔다. 야유를 자제해 달라고 요하는 제스처와 함께 "부탁드릴게요"라고 외쳤다. 믹스트존에 등장한 김민재는 소신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사실 저희가 시작부터 못 하지는 않았다. 못하기를 바라고 응원해주시는 부분들이 조금 아쉬워서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었다. (야유가 영향을 미쳤다는) 그런 것으로 변명하고 싶지 않다. 선수들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워서 그렇게 말씀 드렸다"고 했다.
이 발언 후 커뮤니티는 폭발했다. 김민재의 발언에 대해 찬반으로 나뉘었다. 물론 비판의 목소리가 훨씬 컸다. 붉은악마도 입장문을 내놓았다. 붉은악마는 6일 SNS를 통해 '지기를 바라는 응원은 없다'며 "우리의 야유와 항의는 거짓으로 일관하는 대한축구협회와 스스로 본인의 신념을 저버린 감독에 대한 항의와 야유"라며 "붉은악마가 탄생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선수들과 모든 순간들을 함께했고 어떠한 순간에도 '못하길 바라고' '지기를 바라고' 응원을 하진 않았다"고 했다.
홍 감독도 오만 입성 후 "김민재가 경기 끝나고 이야기한 것을 나중에 봤다. 우리 대표 선수들은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뛴다. 내가 아는 김민재 선수는 항상 팬들에게 감사하면서 팬들의 응원이 아주 힘이 된다고 말하면서 뛰는 선수"라며 "나에 대한 비판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 민재가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선수들한테는 응원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비난은 감독이 받으면 되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안타깝고 소모적인 논란이다. 물론 가장 큰 잘못은 협회에 있다. 협회가 제대로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다. 지금의 협회는 욕을 먹어도 싸다. 팬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그 피해가 선수들에게 가면 안된다. 태극마크가 소원인 선수도 있을테고, 월드컵 출전이 필생의 꿈인 선수도 있을거다. 물론 김민재의 행동이나 태도도 분명 비판 받을 소지가 있지만, 김민재가 원하는 것은 승리였다. 팬들의 야유 때문에 이기지 못했다는게 아니라, 힘을 실어줬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아무리 팔레스타인이 한수 아래라고 하더라도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에서는 이기기 힘든게 바로 스포츠다. '원팀'이 중요한 이유다.
물론 내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경기 전, 하프 타임, 경기 후 표출해도 충분하다. 경기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중간에 나가버리거나, 경기 후 야유를 보내면 된다. 경기는 그 자체로 경기여야 한다. 경기의 목표는 '승리'다. 유럽과 남미에서는 아무리 내 팀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경기장에서는 응원을 멈추지 않는다. 어떤 이슈가 있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내 팀의 '승리'다. 물론 경기 전후에는 누구보다 격렬하게 목소리를 낸다.
그 대상이 누구든간에 경기 중 울려퍼지는 야유는 분명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 K리그를 봐도 명확하다. '안티 콜'의 의도가 어쨌듯, 이를 경험한 팀들의 성적표는 좋지 않다. 야유를 경험한 한 선수는 "선수들도 '누구 나가' 하는 소리를 들으면 신경 쓰인다. 그게 누구든 상관없다. 나중에는 팬들이 무서워진다. 아무리 경험 많은 대표 선수라 하더라도 6만 가까운 야유는 더욱 힘들었을거다. 경기 중 전광판을 보는 선수는 없다. 야유가 선수한테 오는건지, 감독한테 오는건지 알 수 없다. 야유가 이어지면 사기가 저하되고, 실수할까봐 위축되고, 그게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캡틴' 손흥민도 "속상하다. 팬분들의 입장을 내가 대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팬분들이 원하는 감독님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선수들도 이미 감독님이 결정됐기 때문에 그 감독님의 옷을 입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결과를 바꿀 수는 없다. 염치없지만 주장으로서 팀을 생각한다면 많은 응원과 사랑을 부탁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들에게 좋은 이야기, 격려를 많이 해주시면 선수들 역시 그 원동력으로 뛸 수 있게 된다. 우리가 홈에서 경기할 때만큼은 적을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상대를 무너뜨리는데 어떻게 하면 더 큰 도움이 될지 곰곰이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강인 역시 "솔직히 말해 다른 선수들은 잘 모르겠지만 저는 대한민국 선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많이 안타깝고 아쉬운 부분인 것 같다. 감독님이 저희와 함께 하게 됐고, 첫 경기였지만, 응원보다 야유로 시작을 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선수들은 100% 감독님을 믿고 따라야 한다. 감독님이 저희가 좋은 축구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실 거라고 믿고 있다. 저희는 100% 따를거다. 앞으로는 감독님과 함께, 코칭스태프분들과 함께 좋은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할 거다. 축구 팬 여러분도 당연히 많이 아쉽고 많이 화가 나겠지만 더 많은 응원,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모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행동들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두가 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논란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