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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AL이라면? '63홈런 vs. 50홈런-50도루', 불세출의 두 영웅이 만들어가는 역사[스조산책 M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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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필자는 LA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의 가장 위대한 성과로 LA 에인절스 시절인 2022년 규정타석과 규정이닝을 동시에 달성한 걸 꼽고 싶다.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본격적인 투타 겸업을 수행한 2021년 이후 그의 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볼 만하다. '원조' 투타 겸업 베이브 루스도 100여년 전 이같은 일은 하지 못했다. 오타니는 그해 666타석에 들어가 34홈런-95타점-OPS 0.875를 마크했고, 166이닝을 던져 15승9패, 평균자책점 2.33, 219탈삼진을 기록했다.

그해 AL MVP는 오타니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규정타석-규정이닝도 홈런 기록을 넘지 못했다. 뉴욕 양키스 애런 저지가 62홈런을 때려 AL 한 시즌 최다기록을 세운 것이다. 시즌 종료 하루 전 1961년 로저 매리스의 61홈런을 61년 만에 깨트렸으니, 뜨거운 여름부터 그의 방망이에 주목했던 BBWAA(전미야구기자협회)의 표심은 오타니를 떠나갈 수밖에 없었다.

30명의 기자단 중 28명이 저지에 1위표를 줬고, LA 지부 2명의 기자만이 오타니를 지지했다.

그해 시즌 후 일본으로 돌아간 오타니는 당시 필 네빈 에인절스 감독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고 한다. 혹자는 오타니가 양키스와 같은 팀을 만났다면 저지와의 처지가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일본 입국 인터뷰에서 "난 작년보다 잘 했다고 생각하다"고 강조했다. 2021년 만장일치 AL MVP였던 오타니가 1년 후의 성적을 그렇게 자평한 것이다.

현지 언론들이 오타니와 저지의 관계를 라이벌로 보기 시작한 시점이다. 하지만 2023년 둘의 AL MVP 경쟁은 싱겁게 끝나 버렸다. 저지가 6월 4일(이하 한국시각) 다저스타디움 경기에서 수비를 하다 펜스에 부딪히며 발가락 골절상을 입어 두 달 가까이 결장했기 때문이다. 오타니는 8월 24일 팔꿈치 부상을 입고 투수로 시즌을 마감한데 이어 9월 4일 옆구리 통증이 도져 타자로도 배트를 놓았음에도 역대 최초로 두 번째 MVP도 만장일치로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오타니는 지난 겨울 FA 역사상 최대 규모인 10년 7억달러의 메가톤 계약을 맺고 AL을 떠났다. 이제 저지와의 직접적인 타이틀 경쟁은 없다. 홈런왕, 타점왕, 트리플크라운은 물론 MVP는 각 리그 소관이기 때문에 둘 다 MVP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리그가 갈린 올해 불세출의 두 야구 영웅이 약속이나 한 듯 '역사적인 대업'을 향해 동반 질주하고 있어 시즌 막판 이슈 싸움이 볼 만해졌다. 이미 양 리그 MVP는 각각 저지와 오타니로 굳어진 상황. 저지는 양 리그를 합쳐 홈런(51), 타점(122), OPS(1.201), WAR(9.2/9.3) 1위를 질주 중이고, 오타니는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40홈런-40도루를 달성했다.

이제 관심은 저지가 자신이 세운 AL 한 시즌 최다 홈런을 다시 갈아치우느냐, 오타니가 역사상 최초의 50홈런-50도루 고지를 정복하느냐에 모아지고 있다. 두 기록 모두 달성 가능권이다.

저지는 26일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홈경기에서 홈런 두 방을 포함, 4타수 2안타 3타점 2득점의 맹타를 터뜨렸다.

0-1로 뒤진 1회말 1사 1루에서 좌완 오스틴 곰버의 바깥쪽 낮은 존으로 떨어지는 82.5마일 체인지업을 걷어올려 좌중간을 훌쩍 넘는 투런포로 연결했고, 5-3으로 앞선 7회에는 우완 제프 크리스웰의 초구 95.4마일 한가운데 직구를 밀어쳐 우측 펜스를 넘겼다.

올시즌 5호, 개인통산 39호 멀티히트 게임을 펼치며 시즌 50-51호 홈런을 마크한 저지는 지금의 페이스를 162경기에 대입하면 63.1개의 홈런을 친다는 계산이 나온다. 2022년 자신이 세운 62개를 넘어설 수 있다.

하지만 저지는 경기 후 "63홈런은 분명 대단한 성취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우리는 기록에 앞서 큰 임무가 주어져 있다. 우리는 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며 개인기록보다 팀 우승 목표를 부각했다.

오타니는 8월 들어 무서운 기세로 '40-40'에 접근하며 모든 관심을 태풍처럼 빨아들이더니 지난 24일 홈팬들 앞에서 역대 최단기간에 40홈런과 40도루를 동반 달성했다. 25일 탬파베이전에서도 홈런포를 가동하며 41호 아치를 그린 오타니는 50.7홈런, 49.5도루 페이스다.

오타니는 이날 탬파베이전에서 8회 상대 좌완 리차드 러블레이디의 91.8마일 몸쪽 싱커에 왼팔을 맞은 뒤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펄쩍 뛰어 우려를 낳았다. 경기 후 X레이에서 별다른 이상은 나타나지 않았으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정말 아찔했다. 다행히 손목이 아닌 팔뚝에 맞았다. 뼈를 다쳤다면 4~6주는 버려야 한다"고 했을 정도다. 오타니의 50-50 도전에 로버츠 감독도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올해 두 선수가 같은 AL에서 뛰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AL 한 시즌 최다 기록인 63홈런과 역사상 최초의 50홈런-50도루 중 뭐가 더 값질까. WAR 부문서는 저지가 오타니를 압도하고 있지만, 역사적 성취 측면으로 본다면 BBWAA도 한쪽을 들어주기 어려울 것이다. 어쨌든 2024년은 역대 가장 빛나는 시즌으로 역사에 아로새겨질 수 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