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LA 다저스가 지난해 국내 고교 톱 파이어볼러 장현석에 관심을 갖고 스카우트할 당시 구단의 주머니 사정은 썩 좋지 않았다.
다저스 구단에 돈이 없던 게 아니라 국제 아마추어 FA와 계약할 때 쓰는 국제 사이닝보너스 풀(international bonus pool)이 바닥났다는 얘기다. 2022년 12월~2023년 12월까지 다저스의 국제 보너스 풀은 약 414만4000달러였다. 그런데 장현석과 계약하기 전 중남미 출신 유망주들을 영입하느라 해당 풀을 거의 소진한 상태였다.
결국 다저스가 선택한 자금 조달 방법은 트레이드였다. 작년 8월 5일(이하 한국시각) 두 명의 유망주 투수를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트레이드하면서 보너스풀 100만달러를 대신 받아냈다. 그 가운데 90만달러가 나흘 뒤 장현석의 사이닝보너스로 지급됐다.
MLB.com은 당시 '지난 주 다저스는 화이트삭스에 유망주 투수 알드린 바티스타와 맥시모 마르티네스를 보내고 국제 보너스풀 자금을 확보했다'며 '그때는 단순한 트레이드로 보였지만, 며칠 뒤 그 이유가 분명해졌다. 다저스는 톱클래스 국제 아마추어 선수와 계약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자금을 확보하고 나선 것'이라고 전했다.
그 시점 바티스타는 루키 레벨에서 싱글A인 란초쿠카몽가로 막 승격한 직후였고, 마르티네스는 루키 레벨에 몸담고 있었다. 두 선수는 각각 2022년, 2021년 국제 아마추어 FA 신분으로 다저스와 계약했다. 그러나 각각 1~2년 뒤 장현석 계약을 위한 구단의 자금 확보 차원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다저스는 장현석에 '진심'이었다.
MLB파이프라인은 올초 장현석을 2024년 유망주 랭킹서 다저스내 17위로 꼽으면서 '1994년 박찬호를 한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영입한 다저스는 장현석에 매료돼 유망주 투수 둘을 화이트삭스로 보내면서 100만달러로 확보했다'며 '장현석의 직구는 94~96마일에서 형성되며 99마일까지 찍힌다. 6피트 4인치의 체구에 근력이 붙으면 구속은 더 올라갈 것'이라며 '회전에 대한 감을 잡아 84~87마일의 하드 슬라이더와 76~82마일 낙차 큰 커브의 구종 가치도 플러스다. 체인지업은 80미알대 후반으로 홈플레이트에서 떨어지는 각이 좋다'고 평가했다.
올해 본격적인 마이너리그 수업에 들어간 장현석은 지난 9일 루키 레벨인 ACL 다저스에서 싱글A인 란초쿠카몽가로 승격됐다.
승격하자마자 등판한 프레스노 그리즐리스(콜로라도 로키스 산하)전서는 1⅓이닝 동안 2안타와 2볼넷을 내주고 3실점하는 부진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 16일 비살리아 로하이드(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산하)와의 원정경기에서는 완벽했다. 3이닝 동안 1안타와 2볼넷을 내주고 삼진 7개를 빼앗으며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마이너리그 데뷔 후 가장 잘 던진 경기였다.
장현석은 루키레벨 ACL 다저스 소속으로 13경기(선발 10경기)에 등판해 24⅓이닝을 투구해 1승2패, 평균자책점 8.14, 18안타, 19볼넷, 49탈삼진을 기록했다. 제구가 아직은 들쭉날쭉하지만, 90마일대 후반의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 등을 앞세워 발군의 탈삼진 능력을 과시하며 싱글A에 올랐다.
란초쿠카몽가에서도 2경기 4⅓이닝 동안 3안타 4볼넷을 내주고 삼진 10개를 뽑아냈다. 평균자책점은 6.23으로 낮췄다.
ACL 다저스 시절을 합쳐 올시즌 마이너리그 28⅔이닝 동안 59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이를 9이닝 평균 18.52개의 삼진을 잡아낸 셈이다. 압도적인 수치다. 올시즌 마이너리그에서 10이닝 이상 던진 투수들 가운데 단연 1위다.
경기 후 란초쿠카몽가 구단 홈페이지는 '선발 장현석은 퀘이크스 승격 후 두 번째 등판서 3이닝 동안 7타자를 삼진처리하는 등 날카로운(sharp)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다저스 팜에서 장현석의 존재감이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