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자존심? 사는 게 '장땡'이지.
SSG 랜더스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의 출루머신으로 인정받은, 살아있는 레전드다.
그 대단한 선수가 팀을 위해 자존심을 내려놨다. 굳이 자존심을 세우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는 건지, 메시지를 보여주는 명장면이었다.
SSG는 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6대2로 역전승을 거뒀다. 4연패 탈출 천금의 승리였다.
여러 수훈 선수가 있었지만 추신수도 돋보였다. 1-2로 밀리던 7회 천금의 동점타 포함, 3안타를 쳤다. 추신수의 동점타가 나오며 잘싸우던 키움이 흔들렸고, 이어 최정의 결승타와 한유섬의 쐐기타가 쭉쭉 터졌다.
그런데 동점타보다 더 인상적인 건 추신수의 두 번째 안타였다. 5회였다. 1-2로 밀리고 있었고, SSG는 1회 최정의 선제 솔로포 후 득점이 되지 않아 답답한 흐름이었다.
추신수는 초구 하영민의 커브에 기습 번트를 댔다. 그리고 1루까지 전력 질주를 했다. 세이프.
키움 3루수 송성문은 당겨치는 추신수를 대비해 베이스쪽을 비우고 그라운드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올시즌을 앞두고 시프트 제도는 철폐됐지만, 이는 베이스를 넘어가지 않는 것일 뿐 수비 위치 조정은 문제가 없다. 사실상의 시프트였다.
많은 팬들이 시프트로 비어있는 공간이 생기면 "왜 저기에 번트 대고 안 뛰나"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런 타자는 거의 없다. 시프트가 걸린다는 건, 그만큼 잘 치는 강타자라는 의미인데, 이 선수들에게는 시프트 허점을 파고 드는 타격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정면 승부를 해 저 시프트를 격파해버리겠다, 이런 생각들이지 치사하게(?) 빈 곳에 번트를 대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존심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추신수는 송성문을 본 후 곧바로 번트를 댔다. 키움 내야는 추신수의 이 번트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추신수는 올시즌 후 은퇴한다. 연봉 협상을 더 벌일 일도 없다. 자기 안타 1개 추가하자고 그렇게 상대 허를 찌르지 않았을 것이다. 팀을 위한 선택이었다.
추신수는 경기 후 방송 인터뷰에서 "최정이 첫 타석 홈런도 치고 해서, 2아웃이지만 내가 주자로 나간다면 동점 찬스가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하며 "3루수 위치를 보니 번트가 들어만 가면 살 수 있겠다 싶었다. 예전같이 빠르지는 않지만, 기회가 있겠다 싶었다. 마음은 빠르지만, 다리는 안 나간다"며 웃었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