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왜 입술이 파랗냐고 하던데요."
아무리 '강심장'을 가진 선수라도, 인생에 단 한 번 뿐인 프로 데뷔전을 위해 그라운드에 서면 얼마나 떨릴까.
삼성 라이온즈 1라운드 지명 '거물 루키' 육선엽은 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에서 감격의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처음 1군에 콜업됐는데, 경기가 박빙이라 등판 기회를 얻지 못할 뻔 하다 6회초 이성규의 스리런포가 터지는 등 점수차가 9-2로 벌어지며 7회말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다.
육선엽은 경기 전 신인의 패기로 "안타를 맞겠다는 생각으로 공격적으로 던지겠다"고 당당히 선언했는데 이게 웬일. 첫 타자 강승호에게 중견수 방면 큰 타구를 맞아 당황했는지 라모스에게 볼넷, 박계범에게 안타, 조수행에게 볼넷을 내주며 흔들렸다. 누가 봐도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경기 전 당당함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위기 상황 정수빈을 병살로 처리하며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쳤다는 점. 팀도 대승을 하고 데뷔전 무실점 투구를 했으니 행복한 날이었다.
하지만 육선엽에게는 '굴욕의 데뷔전'으로 남게 됐다. 여기저기서 놀림을 받은 것이다. 2일 두산전을 앞두고 육선엽이 인터뷰를 하자 지나가던 강명구 코치가 "새가슴"이라고 외치며 지나갔다. 물론 귀여운 막내 제자에게 짓궂은 농담을 한 것이다. 강 코치는 이내 "크게 될 투수"라고 정정했다.
박진만 감독도 "어쩔 수 없다. 나도 데뷔전 때 후들후들 떨었다. 긴장도 한 것 같고, 붕 떠있더라. 그래도 구위, 구속이 좋아 경험을 쌓으면 좋은 활약을 펼칠 것"이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육선엽은 "나는 긴장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한 것 같다. 내가 던진 영상을 보니 확실히 긴장했다"고 쑥스럽게 얘기했다. 이어 "첫 타자는 꼭 잡고 싶어서 80% 힘으로 던지고, 그 다음부터 세게 던진다고 하다 밸런스가 다 무너졌다. 그래도 (이)재현이형이 병살로 잘 막아주셔서 다행이다. 데뷔전은 좋게 지나가주셨으면 좋겠다"고 수줍게 말했다.
모두가 긴장을 했다고 여긴 거친 호흡, 이에 대해 육선엽은 "컨디션을 찾으려는 과정이었을 뿐"이라며 오해는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지난해까지 장충고에서 함께 생활했던 황준서(한화) 김윤하(키움) 등 먼저 데뷔전을 치른 친구들이 육선엽의 경기를 봤다고. 그리고 연락이 왔는데 황준서의 놀림이 걸작이었다. 육선엽은 "준서가 '너 왜 입술까지 파랗냐'고 했다"며 껄껄 웃었다. 삼성의 유니폼이 강렬한 파란색인데, 육선엽의 파랗게 질린 입술 색깔이 매우 인상적이었나보다.
육선엽은 마지막으로 "빨리 다음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 만회하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박 감독은 현재 선발진이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당분간 육선엽을 롱릴리프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잠실=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