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대식 기자]해리 케인은 정말로 씁쓸한 감정이 들 것이다.
레버쿠젠은 15일(한국시각) 독일 레버쿠젠의 바이 아레나에서 열린 베르더 브레멘과의 2023~2024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29라운드에서 5대0 대승을 거뒀다. 승점 79점이 된 레버쿠젠은 잔여 일정과 상관없이 분데스리가 우승을 확정했다.
레버쿠젠의 우승으로 2012~2013시즌부터 이어졌던 바이에른 뮌헨의 분데스리가 천하도 마무리됐다. 바이에른이 가지고 있던 11시즌 연속 리그 우승 기록도 이번 시즌에 끝났다.
시간문제였던 바이에른의 리그 우승 실패가 확정이 되자 케인을 놀리는 축구 게시물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케인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토트넘을 떠나 바이에른에 입성했다. 케인은 우승 때문에 이적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트로피를 향한 케인의 갈망이 이적을 완성해냈다.
바이에른은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기 위한 목적으로는 최고의 팀이다. 리그에서 압도적인 강함을 자랑하는 팀이기 때문이다. 분데스리가 32회, 독일축구협회(DFB) 포칼컵 20회, 유럽챔피언스리그(UCL) 6회 우승 등 차지한 트로피 개수만 해도 70개가 넘는다.
케인이 프로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2014~2015시즌 이후로 전 세계에서 바이에른만큼 성공을 거둔 구단은 몇 없다. 그만큼 바이에른의 위엄은 대단하다.
하지만 케인이 이적하자마자 역대급 최악의 시즌을 보내는 중이다. 어떻게든 케인을 빨리 데려와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려고 했지만 독일축구리그(DFL) 슈퍼컵에서 준우승을 거두면서 무관의 저주가 이어지고 있다. DFB 포칼컵에서는 일찍이 탈락했고, 리그에서조차 사비 알론소 군단에 밀렸다. 아직 UCL이 남아있지만 최근 바이에른의 경기력을 분석한 전문가 중에 바이에른을 우승 후보로 꼽는 사람은 없다.
축구를 재미나게 소개하는 SNS인 트롤 풋볼은 레버쿠젠의 분데스리가 우승이 확정된 후 '케인 효과가 킹슬리 코망 효과보다 강력했다'고 언급했다. 코망은 프로에 데뷔한 뒤로 단 1시즌도 리그 우승을 놓친 적이 없는 우승 보증 수표다.
파리 생제르맹, 유벤투스, 바이에른에서 매 시즌 리그 우승을 맛봤다. 리그 우승뿐만이 아니라 코망은 프로 선수로서는 섭렵하지 못한 트로피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각종 컵대회 우승 트로피도 모자라 바이에른에서는 2019~2020시즌 트레블까지 달성했다. 코망은 당시 트레블 우승에 마침표를 찍는 UCL 결승전 결승골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반면 케인은 무관의 저주에 시달리는 선수다. 데뷔한 뒤로 단 1개의 메이저 트로피를 손에 쥐어보지 못했다. 준우승만 수차례다. 2014~2015시즌 첼시와의 카라바오컵 결승, 2018~2019시즌 리버풀과의 UCL 결승, 2020~2021시즌 맨체스터 시티와의 카라바오컵 결승 그리고 유로 2020 준우승까지 컵대회에서만 우승 트로피를 코앞에 두고 4번이나 미끄러졌다. 리그 준우승 기록까지 합치면 무려 5번이나 준우승했다.
결과적으로는 케인의 저주가 코망의 우승 운보다 강력했다는 게 입증됐다.
케인 정도의 선수가 우승 기록이 없이 커리어를 끝내는 건 조롱의 대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에 케인이 트로피에 대한 갈증을 얼마나 느끼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안타깝지만 결과적으로는 케인의 저주가 코망의 우승 운보다 강력했다는 게 입증됐다.
케인은 억울할 것이다. 케인의 이번 시즌 파괴력은 인생 최고 시즌이기 때문이다. 공식전 38경기에서 무려 39골 12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분데스리가에서만 29경기 32골 7도움을 기록 중이다. 케인의 리그 득점력은 바이에른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였던 게르트 뮐러와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를 소환시킬 정도로 대단했다. 유럽대항전에서도 토트넘에 있을 때보다 한 차원이 다른 수준의 공격력을 보여줬다. 케인은 지금까지 9경기에서 7골을 넣으면서 UCL 득점 1위를 질주 중이다. 유럽 5대 리그에서 케인보다 득점에 많이 관여한 선수는 없다. 바이에른이 우승 트로피를 휩쓸고 다니는 성적을 만들어냈다면 케인은 발롱도르 유력 수상 후보로 거론되도 이상하지 않는 퍼포먼스다.
우승 실패의 이유를 분석하자면 결국엔 토마스 투헬 감독의 무능력과 이를 제어하지 못한 바이에른 수뇌부의 선택이 언급되고 있다. 투헬 감독은 분데스리가 역대 최고 이적료를 기록한 케인을 비롯해 김민재, 콘라드 라이머, 라파엘 게레이루 등을 구단에서 영입해줬는데도 더 성적이 추락했다. 어떤 축구를 하고 싶은지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선수들의 경기력 하락도 심각했다. 바이에른 공격진에서 제목을 해준 선수는 케인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말 무시알라는 성장세가 더뎌졌고, 르로이 사네는 전반기에는 뛰어났지만 후반기에는 팀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나이가 30대 중반인 토마스 뮐러한테 많은 걸 기대하긴 어렵다.
우승 보증 수표인 킹슬리 코망과 세르주 그나브리는 부상에 허덕이다가 결국 시즌 아웃됐다. 케인이 마치 토트넘에서처럼 바이에른에서도 독박축구를 하면서 이끌고 가고 있던 셈이다. 그런 선수가 우승도 못했는데 놀림을 당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케인이 조리돌림을 피할 수 있는 건 결국 우승으로 증명하는 방법밖에 없다. 위기에 빠진 바이에른을 이끌고 UCL 우승을 해내거나 1966 월드컵 우승 이후 메이저 트로피가 없는 잉글랜드에 유로 2024 트로피를 안기면 된다.
이번 시즌 안에 케인이 무관 탈출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다음 시즌을 기약해야 한다. 바이에른에서 언젠가는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는 건 시간문제다. 바이에른은 21세기에 리그 우승만 17번을 차지했을 정도로 압도적인 성과를 자랑한다. 2시즌 연속 우승을 못한 건 위르겐 클롭 감독의 도르트문트 시절밖에 없다.
바이에른이 투헬 감독의 대체자로 어떤 사령탑을 데려올 것인지가 중요할 전망이다. 알론소 감독 선임에 실패한 바이에른은 현재 율리안 나겔스만 독일 감독 선임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지네딘 지단 전 레알 마드리드 감독과 구단이 접촉했다는 소식도 있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독일 스카이 스포츠에서 활동하며 바이에른 관련 공신력이 뛰어난 플로리안 플레텐베르크 기자는 15일 "바이에른과 지단 감독과 관련된 새로운 루머는 맞지 않다. 바이에른이 최근 며칠 동안 지단 측근들과 접촉했다는 보도가 진실이 아니라고 들었다. 지단은 몇 주 전 투헬의 조기 해고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때만 거론됐다. 이제 바이에른은 나겔스만 감독 복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로베르트 데 제르비 브라이튼 감독 역시 후보로 남아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