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독일 국왕 사비 1세가 레버쿠젠을 우승권에 올려놓았다."
스페인 일간 마르카는 15일(한국시각), 독일 클럽 바이어 레버쿠젠이 독일 레버쿠젠 바이 아레나에서 열린 베르더 브레멘과 2023~2024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29라운드 홈 경기에서 5-0으로 승리하며 조기 우승을 확정한 뒤, 기적을 쓴 사비 알론소 레버쿠젠 감독을 '국왕'에 빗댔다.
또, '바이에른 제국'을 전복시키려는 알론소 감독의 노력을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에 비유했다. '아스테릭스'는 프랑스의 국민 만화로, 율리우스 카이스르가 이끄는 로마 군인을 켈트족 전사인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이 마법 물약의 힘으로 무찌른다는 내용이다. 페르난도 카로 레버쿠젠 CEO는 "우리는 뮌헨의 헤게모니를 종식해야 한다. 같은 팀이 11년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것은 최고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축구계는 챔피언스리그에선 아틀레티코, 리그에선 레버쿠젠에 빚을 지고 있다"고도 했다.
도시 레버쿠젠은 현재 분데스리가를 누비는 18개팀 중 세 번째로 인구(16만3000명)가 적다. 구단 예산은 전체 4위(2억5000만유로·약 3680억원)로, 7억8000만유로(1조1500억원)인 뮌헨의 3분의1 수준이다. 알론소 감독은 뮌헨 소속 미드필더로 2014~2015시즌, 2015~2016시즌, 2016~2017시즌 3년 연속 분데스리가에서 우승해 '1강 뮌헨'의 위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알론소 감독은 2022년 10월 팀 지휘봉을 잡았을 때, 팀 순위는 17위였다. 가파른 내리막을 타며 강등에 대한 우려가 싹 텄다. 첫 시즌, 팀 분위기를 확 바꿔 리그를 6위로 마친 알론소 감독은 올 시즌 리그 29경기 전 경기 무패를 질주하며 5경기를 남겨두고 조기 우승을 확정하는 기염을 토했다. '손흥민 전 소속팀'인 레버쿠젠은 2위권인 '김민재 소속팀' 뮌헨, '정우영 소속팀' 슈투트가르트와 승점차를 16점으로 벌렸다. 승점(79점), 승리(25승), 득점(69점) 등에서 이미 자체 신기록을 경신했다. 손흥민(토트넘)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2년간 레버쿠젠에서 기량을 쌓아 유럽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앞서 '차붐' 차범근은 1983년부터 1989년까지 레버쿠젠 유니폼을 입고 1998년 UEFA컵(현 유로파리그) 우승을 선물했다.
알론소 감독은 무엇보다 팀에 만연한 '루징 멘털리티'를 씻어냈다. 레버쿠젠은 1999~2000시즌 최종전에서 미하엘 발락의 자책골로 우승을 놓치고, 2001~2002시즌 리그, 컵, 챔피언스리그에서 모조리 준우승하는 안타까운 행보로 '네버쿠젠'(절대 우승하지 못하는 레버쿠젠)으로 불리었다.
레버쿠젠은 29경기 연속 무패로, 2013~2014시즌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끄는 뮌헨이 작성한 28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뛰어넘었다. 컵 포함 43경기 연속 무패(37승 6무)를 질주하며 2011~2012시즌 유벤투스가 작성한 최다경기 연속 무패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이미 분데스리가를 거머쥔 레버쿠젠은 트레블 가능성도 살아있다. 카이저슬라우테른(2부)과 DFB 포칼 결승, 웨스트햄과 UEFA 유로파리그 8강 2차전을 남겨뒀다. 8강 1차전에서 2-0 승리해 준결승 진출의 유리한 고지를 점한 상태다.
'마르카'는 "이젠 '위너쿠젠'"이라면서 레버쿠젠의 이번 우승을 2015~2016시즌 세상을 놀라게 한 레스터시티의 EPL 우승에 견줬다. 레스터는 당시 강호들의 동반 부진을 틈타 창단 132년만에 처음으로 잉글랜드 최상위리그 타이틀을 거머쥐며 큰 울림을 남겼다.
'맥주 강제 샤워'를 당한 알론소 감독은 "모든 타이틀은 특별하지만, 최고 레벨의 타이틀은 굉장하다. 우리는 첫 번째 우승으로 레버쿠젠 역사의 일부가 됐다. 이제는 축하할 시간"이라고 감격적인 우승 소감을 밝혔다.
알론소 감독은 지난 3월 올 여름 공석이 되는 뮌헨과 리버풀 감독직을 거부한 뒤 레버쿠젠 잔류를 선언했다. 팀을 지휘한 기간은 2년이 채 되지 않지만, 벌써 '신'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 이날 3만명에 가까운 레버쿠젠 팬은 경기장 앞 도로를 '사비 알론소 거리'로 명한 곳에서 우승 파티를 즐겼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