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여기 선수들도 여러분 같이 어린이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는 어린이들이, KBO리그 선수들을 직접 만나도 감격일텐데 미국 메이저리그 슈퍼스타들에게 야구를 배운다면 어떤 느낌일까.
이 말도 안되는 일이 현실이 됐다. 약 120여명의 한국 야구 꿈나무들, 그리고 주한 미군 자녀들이 16일 서울 용산 어린이정원 어린이 야구장에 모였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은 따사로운 햇살 아래 오전부터 '레전드'들에게 야구를 배웠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선두로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 '오버왕' 홍성흔이 친절하게 선수들을 지도했다.
이들과의 만남도 황홀하지만, 어린이 선수들이 기다리는 순간은 따로 있었다. 바로 샌디에이고 선수들과의 만남. 오전 훈련 후 점심을 맛있게 먹자,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슈퍼스타들이 등장했다. 김하성, 고우석, 매니 마차도,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마쓰이 유키 등 TV에서만 볼 수 있던 선수들이 눈앞에 나타나자 어린이 선수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서울시리즈'를 위해 15일 새벽 입국한 샌디에이고 선수들은 시차 적응도 되지 않았을 시간에, 성심성의껏 어린이 선수들을 지도했다. 마차도와 타티스 주니어는 1시간 넘게 쉬지 않고 티볼을 직접 올려주고, 원포인트 레슨을 해줬다. 박수와 하이파이브 선물도 잊지 않았다. 김하성은 주릭슨 프로파와 함께 수비를 가르쳤다. 고우석과 마쓰이는 어린 선수들에게 그립을 알려주는 등 '친절한 삼촌' 역할을 했다.
이 순간만으로도 행복했는데, 깜짝 손님까지 방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예고 없이 현장을 찾아 어린이 선수들과 샌디에이고 선수단으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윤 대통령은 김하성, 마차도, 타티스 주니어의 티볼 배팅 시범을 본 후 직접 방망이를 잡았다. 3번 힘차게 방망이를 돌렸는데, 중전 안타성 타구를 만들어 '야구광'이란 사실이 거짓이 아님을 입증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도 초등학교 3학년 때 동네 형들과 야구를 시작했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나고,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여러분들이 부럽다"며 "책 읽고, 공부만 해서는 리더가 될 수 없다. 스포츠를 통해 룰을 배우고, 몸이 건강해야 리더가 될 수 있다"고 격려사를 전했다. 어린이들이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고 하자 "주말을 늘려주세요"라고 깜찍한 대답을 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그 문제도 생각해보겠다"고 웃으며 답했다.
어린이 선수들 앞에 선 마차도도 "여기 있는 선수들도, 여러분 같은 어린이 시절이 있었다. 모두들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행사는 많은 이들의 노력 끝에 성사됐는데, 중심에는 박찬호 샌디에이고 특별 고문의 역할이 컸다. 박 고문은 행사 시작부터 끝까지 목이 쉬어라 소리를 치며 직접 어린이 선수들을 진두지휘했다. 자상하게 밥도 챙기고, 행사 성공을 위해 두 발로 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보통 메이저리그 팀들은 이런 행사를 할 때 많은 돈을 받는 게 일반적인데, 박 고문 덕에 비교적 손쉽게(?) 슈퍼스타들을 섭외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행사에 함께 참석한 홍성흔은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꿈 같은 일인가. 찬호 형이 정말 열심히 준비하셨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찬호 고문은 이날 윤 대통령에게 메이저리그 데뷔 30주년 기념 글러브를 선물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방미 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만찬 때 함께 했던 박찬호와의 기념 사진 액자를 건넸다.
용산=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