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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TV 안테나 좀 높게 다셨으면, 저도 메이저리그 진출했을까요" [이종범 캠프 인터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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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아버지가 TV 안테나 좀 높게 다셨으면 좋았을텐데, 하하."

이종범 전 LG 트윈스 코치는 미국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의 아버지이기 전, 영원한 '해태 타이거즈의 레전드' 이종범이다.

신인 시절, 빨간 상의에 검은 바지 유니폼을 입은 이종범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투수가 어디에 던져도 다 때려냈고, 문제는 나가면 농락을 하듯 베이스를 훔쳤다. 단타만 치느냐, 장포도 있었다. 수비는 물샐 틈이 없었다. 유격수로 수비 범위가 매우 넓었고, 어깨가 강해 투수가 강속구를 뿌리 듯 1루에 공을 던지니 타자들이 살기 쉽지 않았다. 화려했다.

너무 띄워주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종범 야구를 직접 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말이 되느냐'고 할 것 같다. 그런데 정말 현실이었다. 프로 2년차인 1994 시즌 타율 3할9푼3리 196안타 19홈런 77타점 84도루. 1997 시즌 타율 3할2푼4리 157안타 30홈런 74타점 64도루. 지금 시대에서는 나오기 쉽지 않은 기록들이다. 3할9푼3리, 84도루, 30홈런-64도루 꿈의 숫자다.

그렇다면 이렇게 잘하는 선수가 왜 메이저리그에 가지 못했을까. 아들 이전 미국 진출 선구자로 충분히 활약할만한 기량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전 코치의 선택은 일본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야구가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시기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메이저리그 진출을 논할 분위기 자체가 안됐다. 그나마 얘기가 나왔던 게 '국보' 선동열 전 감독 정도였다.

선수도 꿈은 있을 수 있었겠지만, 아예 시도 자체를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때는 야구를 잘하면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일본이라고 여겨질 때였다.

그렇다면 이 전 코치는 메이저리그에 대한 꿈이 없었을까. 코치 연수를 받고 있는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 텍사스 레인저스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이 전 코치는 "솔직히 정말 뛰어보고 싶었다"고 말하며 "솔직히 그 때는 환경 자체가 미국 진출이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쾌한 농담으로 당시의 아쉬움을 풀었다.

이 전 코치는 "해설위원 일을 할 때 메이저리거였던 김선우와 얘기를 했다. 선우는 집이 서울이었고, 남산 근처였다더라. 그래서 AFKN(주한미군방송)이 나왔다. 그런데 내가 살던 광주는 NHK(일본공영방송)밖에 안나왔다. 아버지가 TV 안테나 좀 높게 다셨으면 우리 집도 AFKN이 나왔을텐데"라고 말하며 껄껄 웃었다.

90년대 AFKN을 틀면 메이저리그, 프로레슬링 중계 등을 볼 수 있는 시절이었다. 그만큼 당시에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자체가 힘들었다는 의미다.

이 전 코치는 "내 야구 우상이 장훈 선배님이었다. 내가 접할 수 있는 최고의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의 차이가 내 꿈도 바꾸게 했다"고 말하며 "장훈 선배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봤다. 손에 피가 나도록 스윙하는 걸 보면서 나도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해태 시절 김응용 감독님이 일본 전지훈련을 가면 꼭 장훈 선배님을 초대해주셨다. 그 때 원포인트 지도도 받고, 하면서 일본 진출을 꿈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