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한동훈 기자] "손가락일 뿐이야."
토트넘 홋스퍼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손흥민의 손가락 부상은 경기력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작은 부상이 있더라도 손흥민은 팀에 반드시 필요한 선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포스테코글루 감독 입장에서 손흥민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간절함이 읽히는 대목이다. 다만 표현이 다소 과격했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다.
손흥민은 3일(한국시각) 영국 런던 토트넘홋스퍼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2024시즌 프리미어리그 27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와 경기에 쐐기골을 터뜨리며 3대1 승리에 앞장섰다.
손흥민은 여전히 손가락이 붕대를 감은 채 경기에 임했다. 경기가 끝난 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손가락이다. 솔직히 손가락이 없어도 큰 문제는 아니다. 그는 여전히 뛸 수 있다. 문제 없다"고 말했다.
경기 후 '풋볼런던'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취재진은 포스테코글루 감독에게 "손흥민이 아직 붕대를 감고 있다. 그의 손가락 상태는 어떤가?"라고 질문했다.
포스테코글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답했다. 그는 손가락은 없어도 된다며 의문을 일축했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교과서적인 답변은 결코 아니다. 포스테코글루는 별로 대답할 가치가 없는 물음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대부분 감독들은 선수들의 부상 회복 정도를 낱낱이 공개하길 꺼린다. 두루뭉술하게 설명하고 넘어가길 선호한다. 이번 경우에는 '아직 완전한 상태는 아니지만 경기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정도가 모범 답안이다.
게다가 꼬투리를 잡자면 끝도 없다. 손가락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몸싸움을 하다가 유니폼을 잡는 장면은 흔하게 나온다. 드로인을 할 때에도 손가락을 사용한다. 공중볼 경합 후 넘어지면서 착지하다가 손가락으로 잔디를 짚어야 하는 상황도 있다. 이 때문에 포스테코글루의 발언은 경솔했다.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 물론 손흥민이 그만큼 필수적인 존재라는 마음이겠지만 정제되지 않은 표현은 개선이 요구된다.
손흥민은 지난 1월부터 2월 초까지 진행된 카타르아시안컵에 대한민국 대표팀 캡틴으로 참가했다. 대회 기간 도중 손가락을 다쳤다.
부상 원인은 영국 언론 '더 선'을 통해 밝혀졌다. 더 선은 지난 2월 14일 '한국은 요르단과 준결승전을 앞두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설전이 벌어졌다'라고 폭로했다.
더 선은 '대표팀 주장이었던 손흥민은 식사 자리를 통해 팀 결속을 다지려고 했다. 일부 젊은 선수들이 식사를 빨리 마치고 탁구를 치러 갔다. 손흥민은 이를 문제 삼았다. 그 후배들 중에는 이강인(PSG)도 포함됐다'라고 주장했다.
더 선에 제보한 소식통은 "싸움은 갑자기 일어났다. 손흥민은 어린 선수들에게 돌아와서 앉으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짧은 순간 선수들이 식당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손흥민은 선수들을 진정시키려다 손가락을 심하게 다쳤다"고 말했다.
이강인은 결국 공개 사과했다. 이강인은 런던으로 직접 찾아가 손흥민과 화해했다. 손흥민도 SNS에 글을 올려 이강인을 용서했다.
손흥민은 "강인이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저를 비롯한 대표팀 모든 선수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저희 모든 선수들이 대표팀 선배로서 또 주장으로서 강인이가 보다 좋은 사람,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특별히 보살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강인 또한 "저의 짧은 생각과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 흥민이 형을 비롯한 팀 전체와 축구 팬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드렸다. 흥민이 형에게 얼마나 간절한 대회였는지 제가 머리로는 알았으나 마음으로 그리고 행동으로는 그 간절함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던 부분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팀에 대한 존중과 헌신이 제일 중요한 것임에도 제가 부족함이 많았다. 대표팀의 다른 선배님들, 동료들에게도 한 분 한 분 연락을 드려서 사과를 드렸다"고 반성했다.
그는 "과분한 기대와 성원을 받았는데도 대한민국 대표 선수로서 가져야할 모범된 모습과 본분에서 벗어나 축구 팬 여러분께 실망을 안겨드려서 다시 한번 죄송하다.앞으로 축구선수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고 헌신하는 이강인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손흥민은 이후 한 달 가까이 손가락 부상을 달고 경기에 출전했다. 하지만 손가락 붕대는 손흥민의 경기력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2월 11일 브라이턴전에는 후반 62분 교체로 나섰다. 1-1로 맞선 후반 추가시간 브레넌 존슨의 극장골을 완벽하게 도왔다. 18일 울버햄튼과 경기에서는 잠시 주춤했으나 이번 크리스탈 팰리스전에 다시 부활했다.
손흥민은 크리스탈 팰리스를 상대로 89분 활약했다. 이른바 'SON 톱'인 최전방 공격수로 출격했다. 경기 종료 직전 교체됐다. 통계사이트 풋몹(fotmob)은 손흥민에게 양 팀 최고인 평점 8.5점을 줬다. 손흥민은 승리의 9부능선을 넘는 골 외에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볐다. 세 차례 득점 기회를 창출했다. 동료 티모 베르너의 골 결정력이 뛰어났다면 도움도 1~2개는 노릴 만했다.
토트넘은 경기 초반 수세에 몰렸다. 손흥민은 전반 18분 번뜩이는 침투 패스를 찔렀다. 상대 공격을 차단한 직후 전방을 파고드는 베르너를 발견했다. 손흥민은 왼발로 감아 무주공산에 공을 정확히 떨어뜨렸다. 베르너는 골키퍼와 맞서는 절호의 단독 찬스를 맞이했다. 그러나 베르너는 슈팅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골키퍼까지 따돌리려다 득점에 실패하고 말았다.
토트넘은 선제골을 허용했으나 후반 77분과 80분 동점, 역전에 성공했다. 갑자기 다급해진 크리스탈 팰리스는 라인을 올리고 공격적으로 나섰다.
크리스탈 팰리스의 텅 빈 후방은 손흥민에게는 탐스러운 먹잇감에 불과했다. 88분 크리스탈 팰리스가 중앙선 부근에서 빌드업 실수를 저질렀다. 뒤로 흐른 공이 최전방에서 도사리던 손흥민 앞으로 굴렀다. 손흥민은 폭발적인 스프린트를 펼치며 질주했다. 손흥민의 스피드를 감당할 수비수는 크리스탈 팰리스에 없었다. 손흥민은 골키퍼와 1대1 상황에서 뜸을 들이지 않았다. 우측 빈 곳을 향해 깔끔하게 차 넣었다. 손흥민의 리그 13호 골이 터지며 토트넘은 승리를 확신했다.
한동훈 기자 dh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