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닥터슬럼프'가 심폐 소생 로맨틱 코미디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JTBC 토일드라마 '닥터슬럼프'(백선우 극본, 오현종 연출)가 지난 27일 호평 속에 첫 방송됐다. 여정우(박형식)와 남하늘(박신혜)의 가장 찬란한 시절 '혐관(혐오 관계)' 모드는 유쾌한 웃음을 안겼고, 슬럼프와 번아웃을 맞은 가장 초라한 시절이자 현재의 모습은 '짠'하고 진한 공감을 유발했다. 무엇보다 세상 끝에 서있던 인생 최악의 순간, 14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의 '재회 엔딩'은 본격적인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1회 시청률은 전국 4.1% 수도권 4.8%(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이날 방송에서는 2009년 서울과 부산, 모의고사 만점을 맞은 '전국 1등' 여정우와 남하늘이 소개됐다. 서울의 여정우는 적수 없는 만년 1등으로, 부산의 남하늘은 독기 품은 공부 천재로 이미 유명했다. 두 사람 사이에 '전쟁의 서막'이 시작된 건, 남하늘이 가족들과 서울로 올라와 여정우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였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듯, 오직 한 명의 전교 1등을 가리기 위한 견제와 경쟁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그리고 이 치열한 전쟁의 승자는 한국대 의대에 입학한 여정우가 됐다.
그 후 14여 년이 흐른 현재의 여정우와 남하늘은 성형외과 의사, 마취과 의사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그 사건은 그와 나의 인생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라는 남하늘의 내레이션처럼, 두 사람의 인생도 역시 CPR(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먼저 여정우는 안면 윤곽 수술 중이던 환자의 과다 출혈 사망으로 위기를 맞았다. 마침 사고 당시에만 고장났다는 수술실 CCTV, 병원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항응고제 약병으로 인해 모두가 여정우를 의도적 살인자로 의심했다. 의문의 의료 사고와 수상한 정황들, 이와 엮인 백억 원대의 소송으로 그는 인생 최악의 슬럼프에 빠지게 됐다.
남하늘은 여전히 앞만 보고 달리는 중이었다. 의사가 되기 전까지 공부에 미쳐 살았다면, 의사가 된 후로는 일에 미쳐 살았다. 그러다 보니 본인도 모르는 사이 몸과 마음은 지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하늘은 급성 담낭염으로 도로 위에 쓰러진 채 달려오는 트럭을 마주했다. 바로 그때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이 스쳤고, 이 기회로 병원을 찾게 된 남하늘은 우울증과 번아웃 증상을 겪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방송 말미에는 남하늘의 집 옥상에 돌연 여정우가 나타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눈에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의 머릿속엔 그 시절 소년,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당황과 놀람이 교차하는 이들의 모습 위로 더해진, "그 소년을 인생 최악의 슬럼프인 상황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라는 남하늘과 "세상의 끝에 서 있던, 벼랑 끝에 매달려 있던 바로 그 순간에"라는 여정우의 목소리는 앞으로 펼쳐질 재회 후일담을 더욱 기대케 했다.
'닥터슬럼프'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우울증, 번아웃, 슬럼프 등 '마음의 병'들을 소재로 첫 방송부터 제대로 현실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스타 의사' 여정우와 '열정 닥터' 남하늘은 각자의 이유로 다른 병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시기의 인생 암흑기 속에서 서로 희미한 빛을 비추며 다시 만났다. 이는 두 사람이 서로가 서로에게, 그리고 보는 이들에게 어떤 위로와 힐링을 선사할지 기대를 더했다.
무엇보다 첫 회 만에 '로코력 만렙' 시너지를 최대로 끌어낸 오현종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과 백선우 작가의 위트 있는 대본, 그리고 기대를 확신으로 바꾼 배우들의 케미스트리까지 더할 나위 없었다. 특히 박형식과 박신혜는 극 중 14년이라는 세월의 흐름뿐만이 아니라, 양극단을 오가는 감정 변화까지 디테일하게 그려내며 다시 한번 그 진가를 확인시켰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