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카타르)=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클린스만호의 가장 큰 고민은 풀백이다.
'풀백 대란'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주전 왼쪽 풀백 이기제(수원 삼성)는 지난 20일 요르단과의 2차전에서 햄스트링을 부상했다. 오른쪽 풀백 김태환(전북 현대)도 종아리 근육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김태환과 이기제는 지난 21일 회복 훈련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회 전부터 몸상태가 좋지 않았던 김진수(전북)도 별도 프로그램으로 훈련 중이다. 한국은 사실상 풀백 전멸 상태에 놓였다. 설영우(울산 HD) 한 명만 큰 부상 없이 경기를 소화하고 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많은 옵션을 두고 내부적으로 꾸준히 논의 중이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경고도 상당히 많다. 어떤 변화를 가져갈지 이야기 중이다. 스리백도 옵션이 될 수 있겠지만, 더 논의해 봐야 한다"고 했다. 스리백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후 단 한차례도 스리백을 가동하지 않았다. 인터뷰에서도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였다. 전술적 변화에 인색한 클린스만 감독의 성향을 감안하면 역시 포백 카드가 유력하다.
그래서 거론되고 있는 것이 '유틸리티맨' 이순민(대전하나시티즌) 카드다. 이순민의 본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 혹은 중앙 미드필더지만, 지난 시즌 후반기 풀백으로도 뛰었다. 이정효 감독은 후반기 풀백들의 부상이 이어지자, 해결책으로 이순민을 택했다. 이순민은 왼쪽, 오른쪽 풀백으로 나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광주가 끝내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 진출권을 거머쥔 것은 이순민의 수훈이 컸다. 이순민이 아시안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것도 이같은 멀티 능력에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풀백 자리에 숫자가 없는만큼, 이순민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광주가 포백을 썼던만큼, 이순민도 무리없이 그 자리에 뛸 수 있다. 설영우와 이순민 모두 좌우를 소화할 수 있어, 전술 운용폭도 넓혀줄 수 있다.
문제는 활용법이다. 이순민이 광주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던 것은, 소위 '정효볼'이라 불리는 이 감독의 전술에 특화됐기 때문이다. 광주는 좌우 풀백을 안으로 좁혀 쓰는, '인버티드 풀백' 전술을 활용한다. 중앙에 익숙한 이순민이 측면에서도 무리 없는 모습을 보인 이유다. 이순민은 광주식 빌드업 형태인 3-2에서 수비와 허리진을 오가며 볼을 전개했고, 광주는 이순민을 중심으로 빌드업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반면 클린스만호는 풀백의 보다 직선적인 움직임을 강조한다. 평가전 당시에는 이기제와 설영우가 좁혀서 플레이하는 인버티드 형태가 자주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 들어 이재성(마인츠)과 이강인(파리생제르맹)이 좌우에 선 4-4-2 형태로 바뀌며 풀백 활용도가 바뀌었다. 이재성과 이강인이 중앙으로 이동하고, 풀백이 좌우 측면 공격을 맡는 형태다. 이 역할에 탁월한 김태환의 기용 빈도가 높아진 이유다.
클린스만 감독이 기존 형태나 역할에 변화를 주지 않고 그대로 이순민을 그대로 풀백 자리에 넣는다면, 이순민이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순민이 영리한 선수기는 하지만, 현재 클린스만호가 강조하는 공격적이고 직선적인 플레이에 익숙하지 않은게 사실이다. 더욱이 이순민은 국제 경기 경험이 많은 선수가 아닌데다, 최근 경기를 뛴지 꽤 됐다. 경기 감각 자체가 부족한데, 부담스러운 자리에서 뛰어야 한다.
그냥 하는 우려가 아니다. 클린스만 감독은 과거에도 K리거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모습을 여러차례 보였다. 이순민도 난데 없는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넣었고, 안현범도 윙백이 아닌 풀백으로 활용했다. K리그를 제대로 보지 않아 선수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순민을 단순히 풀백이 가능한 선수로 생각한다면, 이순민에게도, 대표팀에게도 큰 손해를 끼칠 수 있다.
도하(카타르)=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