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중국)=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61년만의 굴욕을 당한 남자배구의 전철, 여자배구는 피할 수 있을까. 눈앞의 만리장성이 너무 높게 느껴진다.
북한 여자배구 대표팀은 4일 중국 항저우 사범대학교 창첸캠퍼스 체육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8강리그 베트남전에서 세트스코어 1대3(17-25 20-25 25-20 22-25)로 패했다.
장내 아나운서는 양팀을 고르게 응원했다. 현장을 가득 메운 중국팬들의 환호는 주로 약자인 북한 쪽을 향했다.
베트남은 1m93의 주포 트란 띠 딴 후이(22득점)를 비롯해 트란 띠 비치 후이(15득점), 트란 뚜 린(13득점) 호앙 띠 키우 트린(11득점) 등이 고른 활약을 보였다. 사이즈와 몸놀림에서 베트남의 우세가 완연했다.
북한은 김현주(27득점)가 팀 공격의 절반 가량을 떠맡았고, 김국화 손향미(이상 9득점) 어령경(8득점)이 뒤를 받쳤다. 리베로 편림향을 중심으로 한 투혼 넘치는 수비도 볼만했다.
3세트를 따내고, 4세트 한때 8-6까지 리드했다. 하지만 11-11에서 포지션 폴트로 역전을 허용했고, 이후 전위로 올라온 딴 후이의 고공 강타에 속수무책이었다. 14-19, 16-21로 차이가 벌어졌고, 패배가 확정됐다.
이날 패배로 북한은 이로써 8강리그 탈락이 확정됐다. 그리고 이는 잠시 후 한국 여자배구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세자르 곤잘레스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4일 오후 8시(한국시각) 중국 항저우 사범대학교 창첸캠퍼스 체육관에서 항저우 아시안게임 8강리그 중국전을 치른다.
북한은 예선 A조 2위로 중국(조 1위)과 함께 8강리그에 올랐다. 이미 1패를 안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앞선 예선리그에서 베트남(2대3)에 패해 C조 2위로 8강 리그에 진출했다. 역시 1패를 안은채 8강리그에 임하고 있다. 중국전 패배시 8강리그 탈락이 확정된다. 베트남전 패배가 점점 무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만약 북한이 베트남을 잡아줬다면, 한국은 중국에 패해도 다음날 북한전 결과에 따라 준결승 진출을 꿈꿀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이 패한 이상, 반드시 중국을 잡아야하는 처지가 됐다.
아시안게임 2연패를 노리는 중국은 FIVB(국제배구연맹) 랭킹 6위로, 아시아에선 일본(8위)와 더불어 양강이다. 홈그라운드를 의식한듯, 2024 파리올림픽 예선에 출전했던 1군이 그대로 출전한다. 세계적인 실력과 더불어 홈팬들의 압도적인 응원까지 업고 있다. 한국은 올해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중국에 1대3으로 패한 바 있다.
한국의 추락 속 일본 아래로 아시아 팀을 찾으려면 39위(베트남) 40위(한국)까지 내려와야한다. 중국의 압도적인 위치와 더불어 그럼에도 아시안게임 8강리그 탈락은 굴욕임을 보여준다. '배구황제' 김연경의 은퇴 후 무너지는 한국 여자배구의 위상이 안타깝다.
한국 여자배구가 1966년 방콕 대회에 첫 참가, 은메달을 땄다. 이후 15번의 아시안게임 중 메달을 따지 못한 건 2006 도하 대회(5위) 뿐이다.
하지만 이제 중국전 패배시 17년만의 노메달이 확정된다. 앞서 1962년 자카르타 대회 첫 참가 이후 61년만의 아시안게임 노메달이란 수모를 당했던 남자와 마찬가지로 이제 아시아에서도 쉽지 않은 한국 배구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8강 진출을 향한 실낱같은 희망, 한국은 지켜낼 수 있을까.
항저우(중국)=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