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꼬이는 듯 했던 '황태자' 황인범의 거취가 전격, 결정됐다. 행선지는 '세르비아의 명문' 츠르베나 즈베즈다다.
즈베즈다는 5일(한국시각) '미드필더 황인범과 4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식발표했다. 황인범의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을 종합해보면, 550만유로, 약 78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로써 올 여름 내내 이슈의 중심에 섰던 황인범은 빅리그가 아닌, 동유럽의 명가 즈베즈다에서 새로운 축구인생을 이어가게 됐다.
황인범의 이적은 앞서 그리스와 세르비아 매체의 보도를 통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스 스포츠 매체 '가제타 그리스'는 황인범의 이적 소식을 동시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적료가 550만유로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올림피아코스가 황인범과 분쟁이 장기화하는데 부담을 느낀 터라 평소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팀인 즈베즈다로 이적을 허락했다고 해설했다. 또 다른 그리스 매체 스포르탈 역시 '올림피아코스는 선수와 법적 싸움을 벌이기보다는 이적료를 벌어들이는 것을 선호했다'고 했다.
세르비아 유력 일간 폴리티카는 탄유그 통신을 인용, '황인범이 즈베즈다의 새 일원이 된다. 4년 계약을 맺었다'며 '약 500만유로(약 71억2천만원)를 3년에 걸쳐 납부한다. 구단 사상 최다 이적료'라고 보도했다. 폴리티카는 '계약 기간 문제로 구단과 갈등을 빚은 황인범이 이미 1달가량 전부터 올림피아코스를 떠난 상황'이라며 '양측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즈베즈다가 개입, 황인범 영입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이어 '황인범은 아시아 최고 선수다. 즈베즈다는 최근 10년간 전력을 가장 크게 보강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카잔에서 뛰던 황인범은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축구연맹(FIFA) 특별 규정을 통해 K리그 FC서울을 거쳐 올림피아코스 유니폼을 입었다. 올림피아코스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리그 32경기,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예선과 본선을 합해 5경기, 그리스컵대회 3경기에 출전했다. 리그에서 3골 4도움, 유로파리그 예선에서 1골, 컵대회에서 1골을 기록했다. 황인범은 데뷔 시즌인 2022-2023시즌부터 리그 사무국이 뽑은 올림피아코스 '올해의 선수'로 뽑힐 정도로 굳건한 입지를 자랑했으나, 구단과 갈등 이후로는 한 차례도 공식전에 나서지 못했다.
황인범은 올림피아코스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원했다. 축구계 관계자와 그리스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황인범은 올림피아코스 측에 직접 이적을 요청한 뒤 계약사항 등을 두고 올림피아코스 구단 측과 이견을 보였다. 황인범은 2022년 7월 그리스 명문 올림피아코스에 입단할 당시 옵션(2년)이 포함된 1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이적 당시 러시아 클럽인 루빈 카잔 소속이던 황인범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으로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특별 규정에 따라 1년 이상 계약할 수 없는 것으로 인지하고, 그에 맞게 올림피아코스와 계약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1년 계약이 종료되는 이번 여름, 이적을 추진한 이유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계약서에 바이아웃 조항이 삽입된 것으로 알고 있다. 황인범은 바이아웃을 제시하는 구단이 나타나면 올림피아코스와 협의없이 이적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알려진 바이아웃 액수는 300만유로(약 43억원)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구체적으로 영입에 관심을 보인 구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올림피아코스는 옵션없는 3년 계약이며, 이적을 하기 위해선 적정한 이적료를 제시해야 한다고 맞서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단은 지난 시즌 대체불가의 활약을 펼친 황인범의 가치를 1000만유로(약 146억원) 이상으로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림피아코스는 오랜 기간 선수를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전략을 활용해왔다. 황인범을 저렴한 이적료에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올림피아코스가 그리스 언론을 통해 '법정싸움을 불사하겠다'는 등 강경한 입장을 내비치면서 양측이 합의점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중순 허리 부상치료 등의 이유로 국내 입국한 황인범은 이번 사태가 원만히 풀려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를 원했다. 이적시장 막바지 독일 뮌헨으로 건너가 마지막 협상을 진행했다. 하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는 듯했다.
애매한 상황이 되는 듯 했던 황인범에게 즈베즈다가 손을 내밀었다. 빅리그의 유럽이적시장은 이미 닫힌데다, 올림피아코스에서 사실상 전력 외로 분류된만큼, 황인범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 연고를 둔 즈베즈다는 3시즌 연속 정규리그와 컵대회 우승을 차지한 대표 명문이다. 유고슬라비아가 1990년대 내전으로 붕괴하기 전까지 권역 최상위 리그였던 '유고슬라비아 1부리그'에서 19회 우승한 이력이 있다. 세르비아 수페르리가에서도 9차례 우승한 명실상부 최강팀이다. 2017~2018시즌부터 6연패다. 그런 만큼 유럽축구연맹(UEFA)이 주최하는 클럽 대항전에도 단골손님이다. 1990~1991시즌에는 유럽챔피언스리그(UCL)의 전신인 유러피언컵에서도 왕좌에 올랐다.
황인범은 대한민국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다. 2015년 년대전시티즌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황인범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후 본격적인 해외 생활을 시작했다. 황인범은 대전에서 94경기에 나서 15골-13도움을 기록했다. 황인범은 이후 2019년 미국메이저리그 사커 밴쿠버 화이트캡스(캐나다)에 입단했다. 2020년 밴쿠버 생활을 청산하고 루빈 카잔에 입단했다. 꾸준한 플레이를 펼친 황인범은 중원의 핵으로 자리매김했다. 모든 대회 38경기에 출전해 6골 7도움을 기록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2022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이 발발했다. 축구계는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제재를 넣었고, 황인범은 빠르게 새로운 팀을 찾아야 했다. 행선지는 K리그1의 FC서울이었다. 단기계약을 맺었다. 황인범은 서울에서 2개월 동안 10경기를 소화하며 특유의 클래스를 입증했다. 서울에서 감각을 유지하며 향후를 도모한 황인범은 그리스 최고의 명문 올림피아코스에 입단했다.
황인범은 이 사이 국가대표로서도 입지를 넓혔다. 파울루 벤투 감독의 황태자로 불리며, 한국축구의 중원을 지켰다.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그라운드 곳곳을 누비는 황인범은 탁월한 축구 센스와 기술을 앞세워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다. 거쳤던 모든 팀에서 중용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도 전경기에 출전해, 한국의 16강에 힘을 보탰다. 새롭게 부임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체제에서도 변함없이 핵심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다. 황인범은 이번 9월 A대표팀의 유럽 원정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주전 자리가 유력하다. 각급 대표팀을 거친 황인범은 A매치 45경기를 소화해, 5골을 넣었다.
황인범은 당초 이탈리아의 인터밀란, 아탈란타, 나폴리, 튀르키예의 갈라타사라이,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아우크스부르크, 묀헨글라드바흐 등의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대했던 팀은 아니지만, 그래도 즈베즈다는 동유럽에서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커리어를 가진 팀이다. 무엇보다 즈베즈다에 합류하면서 UCL에도 출전할 수 있게 됐다. 즈베즈다는 이번 시즌 UCL에서 디펜딩 챔피언 맨시티와 같은 조에 소속됐다. 황인범 역시 즈베즈다로 이적한다면 맨시티를 상대할 기회를 갖게 될 전망이다. 맨시티 외에도 즈베즈다는 RB 라이프치히(독일), 영 보이스(스위스)와 함께 G조에 편성됐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