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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평균에 대한 집착과 오류…신간 '나는 정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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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의사 로버트 L. 디킨스와 조각가 아브람 벨스키가 1942년 만든 '노르마'는 평균과 이상을 반영한 조각상이었다. 18~20세 미국 백인 남성과 여성 수천 명의 측정치를 토대로 제작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45년, 클리블랜드 주요 신문 '클리블랜드 플레인 딜러'가 노르마와 똑같은 체형을 지닌 여성을 뽑는 경연 대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신장, 체중, 가슴·엉덩이·허벅지·종아리 둘레, 발 치수를 제출해야 했다. 약 4천명이 경연에 참여했으나 노르마의 치수와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우승자로 선정된 이는 그저 신체 치수가 가장 비슷했을 뿐이었다. 노르마는 이처럼 실존하는 인간의 몸과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평균을 추구한 조각상 프로젝트는 실패로 판명됐다. 그런데도 표준적인 여성의 아름다움과 관련한 이상형의 추구는 계속됐다.
사라 채니 영국 '메리감정역사센터' 박사 후 연구원이 쓴 신간 '나는 정상인가'(원제: Am I Normal?)에 나오는 내용이다. 저자는 책에서 정상과 표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이른바 정상이라고 불리는 것이 전혀 정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정상'이라는 관념이 서구 사회에 뿌리내린 건 채 200년도 되지 않는다. 그 전에 '정상'이란 말은 직각을 가리키는 수학 용어에 불과했다. 19세기부터 통계학이 발달하면서 과학자들은 인간의 속성을 측정해 처음에는 평균을, 그다음에는 표준을 찾아내려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누가 정상인지를 정의해야 했고, 이는 무엇이 가치 있고, 누가 가장 인간적인 것인가라는 판단으로 이어졌다.
특히 제국주의시기 서구 과학자들은 모국의 인구와 그 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비교했는데, 거의 항상 백인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비교 작업을 진행했다. 인간을 측정하고 표준화하려는 과학자와 의사는 대부분 서구 백인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대부분 배타적인 이성애자였다.
이런 상황은 현재까지도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위어드(WEIRD), 즉 서구의(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Educated), 산업화한(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사람들은 세계 인구의 12%에 불과하지만, 심리학 연구 대상의 96%, 의학 연구의 80%를 차지한다.
저자는 "정상성의 정의에 포함되는 것만큼이나 그 정의로 인해 배제당하는 것 또한 많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상성이란 것이 특정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그 의미가 구성되었는지 질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와이즈베리. 이혜경 옮김. 548쪽.
buff27@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