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김)관영씨! 협조? '협'박으로 '조'짐?", "잼버리도 망치고 전북도 망치고!", "죽은 잼버리에 쫓겨나는 축구"
6일, 전북 현대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하나원큐 K리그1 2023' 25라운드 대결이 열린 전주월드컵경기장. 축구장 곳곳에 팬들의 항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킥오프를 불과 네 시간여 앞둔 6일 오후 3시였다. 2023년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메인 행사인 K팝(K-POP) 콘서트가 1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다는 발표가 나왔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6일 잼버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수용 인력과 이동 조건 등을 종합한 결과 퇴영식인 1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기존 공연 예정일인 6일 저녁이면 대원들은 닷새가량 불볕더위에 노출된 상태가 된다. 의료 전문가들이 온열질환 등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해 날짜와 장소를 변경하고 재구성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동시에 적정 날짜와 장소의 대안을 모색했는데, 전주가 여러모로 비교우위의 장소라고 판단했다. 전주월드컵경기장 수용인원은 4만2000명이다. 관중석 88%에 지붕이 설치돼 있다. 새만금에서 이동 시간은 대략 50분 정도이며 안전관리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돼 있다"고 말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은 전북의 홈 구장이다. 전주시에 구장 임대료를 내고 사용하고 있다. 전북은 홈 3연전을 앞두고 있었다. 6일 인천과 K리그-9일 인천과 대한축구협회(FA)컵 준결승전-12일 수원 삼성과 K리그가 예고된 상태였다. 하지만 K팝 콘서트 관계로 장소 혹은 일정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전북 구단 관계자는 "5일 오후부터 관련 얘기가 있었다. 최종 결정은 6일 오후 2시였다. K팝 콘서트를 11일에 하게 돼 홈 경기를 치르지 못하게 됐다. 두 경기 일정을 옮기게 된 상황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 상대팀, 한국프로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와 얘기를 해야 한다.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전했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도 "계속해서 관련 내용을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구단 입장에서는 손해가 막심한 일이다. 이미 정해진 일정을 급히 수정해야 한다. 선수단 일정이 바뀌는 것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전북은 홈 팬들의 일방적 응원인 '홈 메리트'를 내려놓아야 할 상황이다. 경제적으로도 손해가 불가피하다. 장소가 바뀌면 입장 수익 포기는 물론, 현재로서는 시즌권 팬들에게 홈 2경기 취소분 금액을 환불해줘야 한다. 하지만 구단은 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한다. 국가적 행사에 자칫 분위기를 망치지 않을까 오히려 조심하는 모양새다.
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및 전라북도 홈페이지를 통해 '홈 경기를 기다린 축구 팬들은 무시하나', '앞으로 전주성(전주월드컵경기장의 애칭)을 콘서트장으로 바꿔라', '전주월드컵경기장은 축구장이다'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행동으로도 나섰다. 전북 팬들은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도 1만명 이상이 경기장을 찾았다. 인천전을 앞두고 현 상황을 꼬집는 걸개를 걸었다. 김관영 전북 지사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말도 있었다. 김 도지사는 앞서 "K팝 공연을 전후해 전북 현대의 홈경기가 예정돼 있었다. (구단 측이) 다른 구장으로 옮겨 경기를 치르기로 한 데 감사 드린다. K팝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도록 의료, 소방 등 전북의 모든 인력을 동원하겠다. 행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뒤에 하더라도 늦지 않다. 도전과 개척, 화합이라는 스카우트 정신을 다시 한번 새기고 심기일전해 성공적인 잼버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단 페트레스쿠 전북 감독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날 경기가 끝난 뒤 관련 얘기를 들었다. 페트레스쿠 감독은 "어마어마하다. 태어나서 겪어보지 못한 일이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연히 홈에서 떠나 일정이 불가피하다. 우리 팀이 엄청난 영향을 받을 것이다. 특히 '전주성'이란 홈 구장은 팬들이 12번째 선수로 응원과 성원을 보내준다. 타격이 배가된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선수들은 관련 상황을 뒤늦게 인지한 모습이다. 전북의 홍정호는 "(경기 앞둔) 오후 4시쯤 다른 선수가 얘기해줬다. 하지만 당시에는 확정된 사안인 줄 몰랐다. 대부분의 선수가 그렇다"고 말했다. FA컵 대결을 앞둔 인천의 김도혁도 "(관련 내용을) 경기 끝난 뒤에 알게 됐다"고 했다.
최근 축구계는 '축구 패싱' 문제로 냉가슴을 앓고 있다. 앞서 부산 아이파크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부산은 행사 문제로 벌써 세 차례나 홈 구장인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을 양보했다. 지난 5월에는 2023년 기후산업국제박람회의 폐막식을 겸한 K팝 축제 '드림콘서트', 6월에는 A매치를 위한 경기장 보수, 8월 3일에는 파리생제르맹(PSG)과 전북 현대의 친선 경기를 위해 홈 구장을 내줬다. 당시 부산 팬들은 눈물로 구단의 씁쓸한 현실을 한탄했다. 더욱이 당시 부산시가 구단에 관련 공문도 제대로 보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더 커진 상태였다.
축구계가 홈 구장 양보 문제로 한 차례 거센 홍역을 치른 지 불과 일주일여 만에 공교롭게도 비슷한 일이 또 발생하게 됐다. 전주=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