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 용 기자] 성적은 1승3패지만, 내용은 3승1패. 정찬헌 안 잡은 구단들은 속이 쓰리지 않을까.
최근 KBO리그를 보면 5선발 체제를 1년 내내 유지하는 팀이 거의 없다. 선수들의 부상과 컨디션 난조도 문제지만, 그만큼 한 시즌을 믿고 맡길 만한 뛰어난 토종 선발 투수 자원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4선발까지는 어찌저찌 만들어도, 5선발이 구멍인 팀들이 대부분이다.
키움 히어로즈도 그랬다. '9억팔' 장재영을 키우기 위해 5선발로 낙점했지만 제구 난조를 극복하지 못했다. 급하게 이승호를 끌어다 썼지만, 이도 여의치 않았다. 이 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선수가 베테랑 정찬헌이었다.
사실 정찬헌은 우여곡절 끝 이번 시즌 키움 유니폼을 입었다. 인생 첫 FA 기회가 찾아와 고민 끝에 신청을 했지만, FA 미아가 될 뻔 했다. 원소속팀 키움은 그가 FA를 선택하는 걸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를 원하는 다른 팀들은 보상 문제가 골치 아팠다. B등급이라 보상 선수를 줘야 했다. 키움과 합의해 보상 선수 문제를 해결해도, 보상금이 무려 5억6000만원이었다. 키움은 사인앤드트레이드로 일정 수준 이적료만 받고 그를 보낸다는 대승적 결정도 내려줬지만, 허리 부상 이력이 있고 전성기 구위를 잃은 정찬헌 영입을 마지막 순간 다들 망설였다.
그렇게 정찬헌의 야구 인생이 끝나는 듯 보였다. 본인은 독립구단을 찾아가 공을 던지고 몸을 만드는 등 애썼지만, 이미 구단들이 선수 구성을 마친 후였다. 그런데 절대 손을 내밀 것 같지 않던 원소속팀 키움이 대승적 결정을 내려줬다. 그냥 야구할 수 있게 계약해준 것도 아니고, 2년 최대 8억6000만원이라는 생각보다 후한 조건에 그와 합의를 한 것이다. 키움은 정찬헌의 리더십과 경험을 인정했고, 어차피 야구할 거라면 의욕적으로 해보라며 액수를 높게 측정했다.
그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고 있다. 정찬헌은 23일 KT 위즈전에서 6이닝 무실점 완벽한 피칭으로 시즌 첫 승을 거뒀다. 4번째 등판 만에 거둔 감격의 승리. 시즌 성적은 1승3패지만, 사실 3승1패급 투구였다. 지난 5일 SSG 랜더스전과 11일 LG 트윈스전 모두 6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빈약한 타선 지원에 울었지, 선두 경쟁을 벌이는 강팀들을 상대로 훌륭한 피칭을 했다.
알려진대로 직구 구속은 140km가 될까말까다. 하지만 허리를 다치며 얻은 변화구 구사 능력과 제구가 더욱 정교해졌다. 수싸움도 능해졌다. 맞혀잡는 능력이 늘어나니 효율적이다. KT전 투구수는 6이닝 69구. SSG전과 LG전 역시 6이닝 62구, 86구 뿐이었다. 이렇게 투구수가 줄면 본인도 몸관리가 쉬워지면 시즌 롱런할 수 있고, 그라운드에 서있는 야수들도 경기 중 체력을 아끼며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정찬헌도 일생일대의 기회라 너무 헐값인 조건에는 눈길을 주는 게 쉽지 않았겠지만, 미아가 될 뻔한 선수였기에 다른 구단들이 의지를 갖고 협상만 잘했다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그를 영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선수 1명 몸값에 1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고, 수십억원 선수들이 재 몫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가운데 정찬헌을 놓친 구단들은 아쉬워하고 있지 않을까. 그만큼 이번 시즌 그의 투구가 인상적이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