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연승의 경륜 최강자 임채빈(수성 1m69)에게서 비롯된 '피그말리온 효과'일까? 최근 임채빈처럼 신장 1m70 이하의 단신 선수들이 불리한 신체조건을 극복하고 특선, 우수급에서 주축선수로 맹활약하고 있다.
보통 운동선수들의 신장은 일반인들 보다 큰 편이고 경륜선수들도 1m70 이상의 키에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전체 경륜선수 중 94%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단신 선수들은 6%의 소수에 불과하지만 저돌적인 경기운영과 빠른 상황대처능력을 앞세워 차곡차곡 승수를 쌓고 있는 선수들이 많아지고 있다.
▶최고의 테크니션맨 이태호(20기)
최근 임채빈 못지않게 화제를 모으고 있는 선수는 이태호(신사 1m70)다. 이태호는 지난해 5월 30일 출전 이후 7개월간 공백기를 갖고 지난 1월 전투사가 되어 돌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돌아온 특선급은 공백기 없이 경기에 출전했던 비노조 선수들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주 줄서기에서 좋은 자리를 확보하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나 이태호는 자리가 안난다고 해서 소극적으로 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강축이 있는 편성에서는 몸싸움을 불사르면서 그 뒤를 노렸고 가끔씩은 보여주기 식의 선행, 젖히기도 구사하면서 존재감을 알렸다.
이런 이태호의 열정은 5월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진가가 발휘됐다. 박용범, 정재원의 대결로 압축됐던 5월 20일(금) 광명에서는 반주 전 깜짝 젖히기 우승을 선보이면서 쌍승 57.8배, 삼쌍승 128.4배의 이변을 연출했고, 6월 17일에도 당시 슈퍼특선급이었던 정하늘의 선행을 내선에서 받아간 후 추입까지 연결시키며 자신을 응원했던 팬들에게 쌍승 10.0배, 삼쌍승 55.7배를 선사했다. 다음날에도 정하늘과 다시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간발의 차이로 2착하는 등 6월 17일 이후 현재까지 10연속 입상을 하고 있다.
특히 이 기간에 임채빈을 5차례 만나서 7월 17일 부산결승, 8월 15일 광명결승을 포함해 4차례의 2착, 1차례의 3착을 기록했다.
이태호의 신사팀 후배 정충교(1m66)도 이태호와 거의 흡사한 경기운영으로 지난 1월 14일 쌍승 222.4배, 삼쌍승 647.0배의 대박 우승을 차지하는 등 올 시즌 31전에 1착 3회, 2착 4회, 3착 12회(승률 9%, 연대율 23%, 삼연대율 61%)의 양호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일취월장 이진원(25기), 이찬우(21기)
우수급의 기교파 이진원(김포 1m60), 이찬우(청주 1m69)는 올 시즌 LTE급 속도로 일취월장했다.
먼저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경륜 최단신 이진원이다. 지난해 9월 특별승급으로 우수급에 진출한 후 1착 2회, 2착 5회의 나름 준수한 성적으로 2021년을 마치더니 올 시즌에는 5월 14일 쌍승 162.1배, 삼쌍승 720.8배 대박 우승을 비롯해 41전에 1착 9회, 2착 13회, 3착 7회(승률 23%, 연대율 55%, 삼연대율 71%)의 업그레이드된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찬우는 이진원 보다 시작은 조금 늦었으나 최근 8경기 중에 15일 광명결승, 28일 부산결승을 제외한 나머지 6경기에서 추입 5회, 젖히기 1회 우승을 차지하며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8월에만 6승을 쓸어 담으며 월간 최다승자로 우뚝 선 이진원은 26일, 27일 부산에서는 우수급 대표적 선행형 강자들인 조봉철, 오기호를 연달아 잡아내기도 했다.
▶26기 김다빈, 이인우
우수급의 26기 김다빈(동광주 1m68), 이인우(세종 1m69)는 보통의 단신 선수들이 기교에 능한데 비해 선행에 강점 있는 신인들이다.
작년 선발급에서 적응기를 마치고 올 시즌 시작과 함께 우수급으로 올라온 김다빈은 그 어떤 강자와 붙더라도 기죽지 않는 선행을 감행하면서 입지를 넓혀갔다. 결국 1,2월 시행착오를 거친 김다빈은 3월부터는 승수를 차곡차곡 쌓아올렸고 현재까지 43전에 1착 11회, 2착 11회, 3착 7회(승률 26%, 연대율 51%, 삼연대율 68%)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간 선행입상 14회, 젖히기입상 6회로 선행, 젖히기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이인우의 우수급 데뷔는 김다빈 보다 6개월 뒤진 지난 7월부터였다. 7월 1일 선행 3착으로 데뷔전을 치렀고 다음날 토요경주에서는 젖히기 4착을 하며 예열을 마친 이인우는 3일 일요경주에서 다시 젖히기를 쏘면서 김종력을 여유있게 막아내고 빠르게 우수급 첫 승을 신고했다. 지난주 광명에서는 금요일 선행 2착, 토요일 선행 4착, 일요일 젖히기 3착을 기록했다.
▶불꽃 젖히기 안효운(8기)
안효운(인천 1m68)은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고 있는 46세의 백전노장이다. 작년 6월 27일 출전 이후 약 9개월만인 지난 3월 25일에 선발급으로 복귀한 안효운은 가볍게 특별승급에 성공하더니 4월 29일 우수급 첫 시합에서도 특유의 젖히기를 앞세워 후배들을 무력화시켰다. 초주 대열 4~6번째 자리를 선호하는 안효운은 46세의 선수가 맞나 싶을 만큼 폭발적인 젖히기가 일품이다. 선행형들의 시속이 밋밋하면 가차 없이 젖히기로 넘어서고 강자들이 승부거리를 좁히더라도 막판 추입을 몰아치면서 역전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까지의 우수급 성적은 31전에 1착 10회, 2착 7회, 3착 3회(승률 32%, 연대율 55%, 삼연대율 65%)를 기록 중이며 10회 우승하는 동안 젖히기 우승은 6회, 추입 우승은 4회를 차지했다. 조금만 힘을 내면 최고령 특선급 등극도 가능할 전망이다.
예상지 경륜박사의 박진수 팀장은 "비선수출신 최초의 그랑프리 우승자로 지난주 광명에서 다시 실력발휘를 하기 시작한 박병하(1m70), 호남권의 김기범(1m68), 김이남(1m69), 강재원(1m69), 최원재(1m68), 우수급 자유형 강자 천호성(1m68), 최창훈(1m70) 등도 단신의 매운 맛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선수들"이라고 소개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