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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 잘못한 것 같소" 100억들 낯뜨거워지는 모범 FA, 지금 MVP는 단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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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아무리 봐도 계산을 잘못한 것 같다. 이렇게 잘 할 줄 누가 알았을까.

박병호(36) 얘기다. 박병호는 지난 겨울 FA 시장에 나와 3년 30억원에 KT 위즈와 계약했다. 사실 의외였다. C등급이지만 150% 보상액이 22억5000만원에 이르는데다 직전 두 시즌 연속 2할2푼대 타율에 머무르고 부상도 잦아 '에이징 커브' 진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원소속팀 키움 히어로즈도 시장 수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KT는 계약금 7억원, 합계 연봉 20억원, 인센티브 3억원을 제시했고, 박병호는 망설임없이 게약을 결심했다. KT는 중심타선 보강이 절실했고, 그라운드 안팎에서 분위기를 잡아줄 리더가 필요했다. 박병호에게 FA 시장 초기부터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낸 이유다.

계약 발표 당시 KT는 "중심타선에서 활약해 줄 것을 기대한다"면서 "20~25홈런이면 만족한다"고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여니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페넌트레이스 반환점을 돈 시점, 시즌 MVP를 꼽으라면 박병호를 뻬놓기 어렵다.

2일 현재 성적을 보자. 우선 팀이 치른 77경기 중 74경기에 출전했다. 별다른 부상없이 풀타임을 소화 중이다.

박병호는 미국에서 돌아온 2018년 118경기에서 43홈런을 터뜨렸다. 부상으로 26경기나 빠졌지만, 파워가 이를 채우고도 남았다. 2019년에도 22경기에 결장하면서도 33홈런을 날리며 생애 5번째 홈런왕에 올랐다. 그러나 2020년과 2021년 부상에 감각도 안 좋았다. 2020년에는 93경기에서 타율 0.223, 21홈런, 작년에는 118경기에서 타율 0.227, 20홈런에 그쳤다. 이런 성적표를 가지고 30대 후반의 나이에 20억원이 넘는 보상금 조건이 붙은 FA가 인기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올해 일단 건강에 문제가 없다. 이 하나 만으로도 3년 30억은 잘못된 계산이다.

그리고 타율 0.265, 27홈런, 67타점, 출루율 0.333, 장타율 0.603, OPS 0.936을 마크 중이다. 홈런은 2위 그룹(14개)과 두 배 가까운 수치다. 타점, 장타율도 1위고, OPS는 3위다. 특히 지난달 30일까지 5경기 연속 홈런을 포함해 최근 7경기에서 7홈런, 14타점을 뽑아냈다. 이 기간 KT는 4승3패를 마크하며 승률 5할(0.507)을 넘어섰다.

박병호는 지금 페이스면 올해 50홈런을 넘길 수 있다. 타점은 125개가 된다. 이강철 감독은 "홈런 20개만 치라고 했는데 벌써 다치면 어떡하냐"고 한다. 입이 귀까지 벌어졌다. 강백호가 또다시 부상자 명단에 오르고 외인 타자가 신통치 않은데도 KT가 지금 버틸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가 박병호다. 3년 30억이 '헐값'인 이유다.

올해 연봉 순위에서 박병호는 타자들 중 19위다. 지난 겨울 다년 계약을 한 타자 15명 중에서는 총액 기준으로 3번째로 적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활약상이 박병호보다 나은 선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물론 박병호가 3년 내내 지금 컨디션을 유지할 거라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먹튀'가 속출하고 몸값 거품론이 끊임없이 제기돼 온 FA 역사에서 박병호는 손꼽을 만한 모범 사례로 남을 공산이 크다. 3년 30억은 재고해 볼 만하다.

"생각해보니 계산 잘못한 것 같소. 5억은 너무 적소. 한 10억은 받아야겠소." 영화 '범죄도시'에서 마라룽샤를 게걸스럽게 먹던 윤계상이 의뢰인에게 구두로 합의한 '용역비'를 두 배 높여달라고 요구한다. 의뢰인은 선금 1억에 보험용으로 잔금은 작업 후 치르겠다며 '계약'에 최종 합의한다.

도장을 찍은 후지만 "계산이 잘못됐으니 다시 협상하자"고 하면 KT도 테이블에 앉을 용의가 있지 않을까.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