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누구와도 경쟁하고 싶지 않습니다."
'빙속여제' 이상화(30)가 뜨거운 눈물 속에서 작별 인사를 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늘 혼자만의 전쟁을 치렀던 '선수 이상화'를 내려놓고, 이제 '자연인 이상화'로서의 여유로운 삶을 택하기로 했다.
이상화는 16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호텔에서 공식 은퇴식을 열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소감 발표에 앞서 은퇴식장에는 그간 이상화가 국제무대에서 만들어낸 영광의 순간들이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흘렀다. 이후 이상화가 무대 앞으로 등장해 인사했고, 곧바로 빙상연맹에서 공로패를 전달했다.
차분히 단상에 앉은 이상화는 간단한 인사로 은퇴 기자호견을 시작했다. 하지만 감정이 북받친 듯 여러 차례 말이 중단됐다. 이상화는 "스케이트 선수로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라는 첫 마디 이후에 곧바로 감정의 동요를 보였다. 이어 몇 차례 울먹이던 이상화는 미리 준비해 온 은퇴 소감을 읽었다.
이상화는 "15살 때 처음 국가대표가 되던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2006 토리노 올림픽대회 때는 팀의 막내로 참가해 정신이 없었다. 그저 넘어지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선수 생활을 한 지 17년이 지났다. 이제는 선수로나 여자로서 꽤 많은 나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17년 전에 어린 나이였지만, 이뤄야 할 나만의 목표가 세 가지 있었다. 세계 선수권 우승과 올림픽 금메달, 그리고 세계신기록을 꼭 달성하겠다고 다짐했다. '할 수 있다.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려왔다. 분에 넘치는 국민 여러분의 응원과 성원 덕분에 17년 전에 세운 목표를 다행히 다 이룰 수 있었다"며 차분히 지난 선수 생활을 돌아봤다.
이어 은퇴의 직접적인 이유를 설명했다. 이상화는 "개인 목표를 이룬 뒤에도 국민 여러분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린다는 생각으로 다음 도전에 임해왔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다르게 무릎이 문제였다. 마음과는 다르게 몸이 따라주지 않았고, 이런 상태로는 최고의 기량을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을 통해 해결하려 했지만, 수술 후에는 선수 생활 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재활과 약물 치료로 이어왔지만(울음), 결국 내 몸이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최상의 몸을 유지하지 못한 내 자신에게 많이 실망했고, 그래서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고 상세하게 은퇴 이유를 밝혔다. 이상화는 이 대목에서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부상으로 인해 은퇴하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 했다.
마지막으로 이상화는 "국민 여러분께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모습으로 기억해주는 위치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싶었다.(울음) 항상 빙상여제라 불러주시던 최고의 모습만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비록 스케이트 선수로서의 생활은 오늘로 마감되지만, 큰 사랑에 보답할 수 있게 개인적으로도 노력하겠다"면서 "국민 여러분과 함께 해서 행복했다. 그 사랑과 응원을 평생 잊지 않고 살겠다. 그 동안 감사했다"며 준비해 온 은퇴 소감을 마쳤다.
이후 질의 응답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은퇴 시기를 정한 이유와 향후 계획 등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다. 이상화는 은퇴를 최종 결심한 시기에 관해 "원래 3월 말에 은퇴식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은퇴를 하려니 온 몸에 와 닿았다. 아쉽고 미련이 남아서 좀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재활을 이어왔다. 그러나 몸 상태는 나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예전 상태로 올리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판단해서 지금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상화는 향후 계획에 관해서는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스케이트만 타놨는데, 이제는 여유롭게 내려놓고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즐기고 싶다. 누구와도 경쟁하고 싶지 않다"며 당분간 휴식을 취할 것을 시사했다. 하지만 이상화는 "앞으로 지도자에 대한 생각도 있다. 또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해설위원 또는 코치로 꼭 참가하겠다"고 밝혔다.
소공동=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