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몸이 점점 무대쪽으로 쏠릴 때가 있다. LG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의 막을 올린 뮤지컬 '마틸다'가 그렇다.
'마틸다'는 주인공 마틸다를 비롯해 열 살 안팎의 어린이들이 작품을 이끌어간다. '아이들이 얼마나 잘 할까?'란 기우는 5분, 10분이 지나면서 서서히 놀라움으로 바뀐다. 귀여움과 앙증맞음을 넘어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돌아가는 어린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 앙상블에 몸과 마음이 서서히 몰입된다.
이때 알파벳을 새겨 넣은 아기자기한 무대 세트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을 '버러지'라 부르며 괴롭히는 트런치불 교장, 마틸다를 괴롭히는 못된 엄마 아빠의 코믹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캐릭터도 아이들의 순수함과 대조된다. 어른들의 부당함에 맞서 "이건 옳지 않아!"를 또박또박 외치는 마틸다의 당당함에도 응원의 마음이 생긴다.
'마틸다'는 20세기 최고의 동화작가 로알드 달의 원작(1988)을 영국의 로열세익스피어극단(RSC)이 뮤지컬로 되살린 작품이다.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텔링, 로알드 달의 블랙 유머와 위트에 뮤지컬 특유의 판타지를 넣고, 개성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대비시켜 파닥파닥 생동감이 넘친다.
'마틸다'는 무엇보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뮤지컬 본연의 매력을 듬뿍 담았다는 점에 눈길이 간다.
국내 뮤지컬계는 2000년 이후 양적질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어왔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트렌드가 생겨났는데 바로 '스타 마케팅'이다. 팬덤을 확보한 스타들의 탄생은 시장을 이끄는 큰 힘이 되기도 했으나, 스타마케팅에만 의존하는 엇비슷한 작품들이 양산되는 부작용도 낳았다. 뮤지컬 장르 본연의 매력보다 스타의 '티켓 파워'에만 기댄 정체불명의 작품들이 끊임없이 출몰했다는 뜻이다.
'마틸다'는 탄탄한 텍스트를 바탕으로 문학적인 대사와 드라마틱한 음악이 어우러지고, 배우들(특히 꼬마 배우들)의 열연이 놀라운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무대와 의상, 소품에서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느낄 수 있고, 마틸다의 초능력과 마술, 그네타기, 레이저 감옥 등 소소하지만 아기자기한 볼거리를 곳곳에 배치해 재미를 더했다.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 또한 선명하다. 한마디로 종합예술로 불리는 뮤지컬의 전통에 충실하면서 새로운 시도와 발상을 가미해 창의적이고 맛깔나는 작품을 완성해냈다. "맞아, 뮤지컬은 원래 이런 거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마틸다'가 국내에서 라이선스로 공연된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연기를 소화할 어린 배우들을 찾을 수 있을까'란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한 번 공연하는데 2년이 소요되는 '빌리 엘리어트'를 무대에 올린 신시컴퍼니는 아역 배우들의 트레이닝과 관리에 관한 한 최고의 노하우를 갖췄음을 이 작품을 통해 입증했다.
동화는 척박한 현실의 역발상 판타지이다. '마틸다' 역시 마찬가지다. 다섯살 소녀 마틸다가 전하는, '역경은 용기로 맞서야 한다'는 메시지는 어른들에게도 유효하다.
마틸다 역에 황예영 안소명 이지나 설가은이 번갈아 나서고 김우형 최재림 최정원 박혜미 등이 열연을 펼친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