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창원국제사격장에서 열린 2018 창원세계사격선수권 남자 10m 공기 권총 결선.
발디딜 틈 없이 인파가 몰린 결선 사격장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장면이 펼쳐졌다. 결선 초반 하위권을 맴돌며 탈락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던 진종오는 금메달을 가리는 최후의 두 발을 놓고 아르템 체르수노프(러시아)와 맞섰다. 220.8점인 진종오는 10점대 과녁을 맞추더라도 222.4점으로 앞선 체르수노프의 실수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였다. 진종오가 10.3점, 10.4점을 잇달아 명중시킨 반면, 체르수노프는 9.1점, 10.0점에 그치면서 두 선수가 241.5점, 슛오프로 승부를 가리는 상황에 이르자 장내엔 떠나갈 듯한 함성이 메아리쳤다. 경기 진행 요원의 안내 멘트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환호 속에 진행된 슛오프, 진종오가 10.3점을 쏘며 9.5점에 그친 체르수노프를 제치면서 대역전 드라마가 완성됐다. 불과 보름 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노메달로 눈물을 떨궜던 진종오가 환희의 눈물을 쏟는 순간이었다.
-금메달 소감은.
▶아시안게임 때 좋은 성적을 못내서 욕을 많이 먹었다. 심리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4년 주기인 세계선수권 역시 아시안게임처럼 마지막 출전이 아닐까 싶었다. 힘겨운 승부였지만 좋은 결과를 얻어 기쁘다. 오늘만큼은 마음껏 즐기고 싶다.
-승리를 확신했던 순간은.
▶마지막 한 발까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기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3위를 확보한 뒤에도 '이만큼 한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러시아 선수의 실력이 워낙 좋았다. 마음을 비운게 슛오프까지 가는 원동력이 됐던 것 같다.
-오늘 같은 승부는 처음이 아닐까 싶은데, 큰 점수차를 뒤집은 소감은.
▶결선에 8명이 들어가는데, 한승우, 이대명이 함께 들어와 우리 중 한 명이 메달을 딸 것이라는 것에 안도가 됐다. 후배들과 함께 하는 것 자체가 힘이 됐다.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후배들과 결선에 함께 오르니 마음은 더 좋고 편안했던 것 같다. 결선 초반 8점대를 쏘며 실수를 할 때 러시아 선수가 잘 쏘길래 '오늘 절대 못 이겠구나' 생각도 했다. 운이 따랐던 것 같다. 개인전 성적 뿐만 아니라, 한국 사격이 세계 최정상급 실력을 떨쳤다고 생각한다. 함께 고생한 코치님들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났던 것 같다. 후배들에게 축하한다는 인사를 남기고 싶다.
-힘겨운 본선을 치렀는데, 경기 중 스스로 주문을 외우는 것 같더라.
▶어제까지만 해도 잘 맞던 과녁이 힘겹게 맞았다. 개인전 뿐만 아니라 단체전에서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한 발을 쏠 때마다 '평생 후회할 수도 있는 한 발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신중하게 쐈다.
-리우올림픽 50m 권총 결선 당시 6.6점을 쏘고도 금메달을 따낸 기억이 있다. 집중력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있다면.
▶스스로 최면을 거는게 맞지 않나 싶다. 경기 초반 탈락 위기에 놓이다보니 욕심을 버리게 되더라. 욕심을 부리면 긴장이 커지고 실수도 나오는데, 초반에 8위로 처진 순간 '내가 또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긴장이 풀리고 많이 내려놓게 됐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내 기술이 제대로 나온 것 같다. 초반부터 밑으로 처지는게 좋지 않은 것이지만, 이번에도 욕심을 버리게 하는 한 발이 나온 것 같다.
-아시안게임 부진 이후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들었는데, 눈물의 의미와 연관이 있나.
▶운이 없었다고 밖에 말할 수밖에 없는게, 식사 관리를 잘했음에도 장염에 걸렸다. 5일 동안 고생을 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아 너무 속상했다. 대회 뒤 곧바로 세계선수권이었던 점도 부담스러웠다.
-단체전 우승 비결은.
▶내가 쏜 한 발이 후배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선수들이 훈련하고 경기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을 만들어준 창원시의 덕도 컸던 것 같다.
-도쿄올림픽을 향한 각오는.
▶오늘은 그런 부분에 대해선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웃음). 그저 즐기고 싶다.
창원=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