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종범이 말하는 아들 이정후 "멘탈이 참 좋은 것 같다"

by

휘문고 졸업을 앞둔 이정후를 넥센 히어로즈가 2017년 신인 1차 지명했을 때, 또 지난해 이정후가 각종 고졸 신인 기록을 경신하며 신인왕을 차지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슈퍼 루키' 이정후 얘기기 나오면 반드시 '이종범 아들'이라는 수식어 내지 설명이 따라붙었다. '아버지 이종범'의 큰 그림자를 걱정하는 야구인들이 많았는데, 이정후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며 데뷔 시즌에 144경기 전 게임에 출전해 맹활약했다. 첫 해 빛나는 성과를 두고 찬사가 쏟아졌으나, 한편으로는 조금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특급 루키들이 2년차 징크스에 고전했던가. 또 첫 해 기록은 어디까지나 고졸 신인으로서 놀라운 성적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또한 기우였다. 지난 겨울 개인훈련을 하다 손가락을 다쳐 스프링캠프를 정상적으로 소화하지 못했지만, 두 차례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 말소되기도 했지만, 이제 고졸 최고가 아닌, KBO리그 최고를 바라보고 있다.

이정후는 16일 현재 타격 전체 1위다. 16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까지 83경기에 출전해 349타수 132안타, 타율 3할7푼8리, 5홈런, 43타점, 63득점, 10도루. 1998년 생 20세, 고졸 2년차 선수 성적이 이렇다. 전반기 내내 타격 1위 경쟁을 했던 두산 베어스 양의지, KIA 타이거즈 안치홍, LG 트윈스 김현수를 밀어냈다.

장정석 히어로즈 감독은 "부상으로 엔트리에 빠졌다가 복귀하면 타격 밸런스를 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한데, 이정후는 이런 게 없다. 정말 재능을 타고 난 것 같다"고 했다. 무더운 여름, 이정후의 타격감은 춤을 췄다. 7월 타율이 4할1푼9리(43타수 18안타)였는데, 8월에는 5할3푼4리(58타수 31안타)를 찍었다. 요즘 이정후를 보면 안타를 생산하는 기계같다. 최근 10경기 중 9경기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했고, 3안타 이상을 친 게 5경기다. 지난 11일 LG 트윈스전에선 5안타를 때렸다.

기록만 번지르르 한 게 아니라 내용도 알차다. 15일까지 득점권 찬스에서 3할8푼9리. 좌타자인데 좌투수 상대 타율이 3할9푼8리다. 올 시즌 부상으로 출전 경기수가 적어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지난해 성적(552타수 179안타, 타율 3할2푼4리, 2홈런, 47타점, 111득점, 12도루)을 뛰어넘는 기록이다.

아버지 이종범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48)도 아들의 타격을 보면 깜짝 놀란다고 했다.

이 위원은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입단한 나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프로 2년차 정후가 낫다. 요즘 컨택트를 보면 깜짝 놀란다. 시즌 초반 부상이 없었다면 200안타까지 가능했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가 1994년, 프로 2년차에 타율 3할9푼3리, 196안타, 84도루를 기록한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정후는 지난해 179안타, 올해 132안타, 2년간 총 311안타를 때렸다. 1995~1996년 이승엽의 243안타를 넘어, 고졸 1~2년 최다 안타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시즌 종료 때까지 현재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타격 1위에 40안타 이상을 추가할 수 있다.

아들이 프로에 첫 발을 디뎠을 때 이렇게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프로 수준이 높아져 고졸 루키가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KBO리그를 보면, 고졸 1~2년차 주전 선수는 거의 없다. 대다수 신인 선수가 입단 후 1~2년 2군 리그에서 뛰다가,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해 주전 경쟁을 시작한다. 이정후처럼 첫해부터 풀타임 주전으로 나서, 2년차에 최고를 바라보는 케이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 위원은 "정후가 프로에 입단해 자리를 잡고 자기 야구를 하는데 4년 정도 필요하다고 봤다. 정후에게 4년간 실패도 맛보고, 경험을 쌓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자신이 대학 4년간 실력을 쌓은 것처럼, 아들 또한 프로 첫 4년은 준비의 시간으로 봤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예상을 보기좋게 깼다.

이 위원은 "기술적인 조언은 안 한다. 그런 부분은 소속팀 코칭스태프가 해야할 일이다. 프로 첫해에도 얘기했지만, 선수로서 인성, 마음 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잘 했을 때 칭찬은 하는데, 그 이상의 얘기는 안 한다"고 했다.

프로 2년차가 되면 상대 투수들의 집중 견제에 따라 고전하게 되는데, 이정후는 이를 이겨내고 능력치를 몇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이 위원은 "지난 시즌에는 힘이 부족해 배트에 공을 갖다 맞힌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올해는 타구에 힘을 실어 날린다. 변화구, 몸쪽 코스 공에 밸런스가 깨지지 않고 잘 대처한다"고 칭찬했다. 2년차에 상대 투수에게 빈틈을 주지 않고, 오히려 장단점을 파악해 공략한다는 설명이다.

이 위원은 "아버지 이름값 때문에 부담이 될 수도 있을 텐데, 확실히 멘탈이 강한 것 같다. 경기에서 부진한 날에도 집에 오면 '아빠, 내일 잘 하면 되지 뭐'라고 한다"며 웃었다.

아버지는 현재 보다 미래를 얘기했다.

"가장 중요한 건 지속성이고, 안 좋았을 때 이겨내는 능력이다. 정후가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처럼 앞으로 10년, 20년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 나갔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못했는데, 정후는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투타를 겸하고 있는 오타니는 고교 1학년 때부터 메이저리그를 목표로 제구, 구속 증가, 변화구 훈련 등 세부 실행 계획을 세워 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18세부터 42세까지 연령별 목표를 수립했는데, '18세 메이저리그에 입단-21세에 선발진 합류 16승-22세 사이영상 수상-25세 시속 175㎞ 세계 최고 구속 달성-30세 일본인 투수 통산 최다승' 등이 담긴 계획서가 공개돼 화제가 됐다.

이종범-이정후 부자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대표팀 코치, 선수로 함께 출전한다. 18일 대표팀 소집 훈련이 시작된다. 이정후는 지난 13일 대표팀 일부 엔트리 조정 때 합류가 결정됐다. 리그 수위 타자의 대표 발탁에 이의를 제기하는 야구인은 없다. 지난해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에 이어 두 번째 대표팀 부자 동행이다.

이 위원에게 '대표팀 1차 최종 엔트리 발표 때 정후가 탈락해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더니, "애 엄마가 울어 나도 모르게 따라 울었다"고 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