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치열하고, 흥미진진하다. 4일 현재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 LG 트윈스는 선두 독주중인 두산 베어스 바로 아래 2~4위에 자리하고 있다. 한화가 앞서가고 SK와 LG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쫓는 양상이다. 세 팀간 격차는 3경기. 상승 흐름을 타면 순식간에 경쟁 구도를 깰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순위만 살짝 뒤바뀔 뿐 요지부동이다. 5월 29일 이후 한달 넘게, 이들 세 팀이 2~4위 블록을 형성해 순위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세 팀 모두 사연 많은, 눈에 띄는 행보다.
먼저 한화를 보자. 한용덕 감독(53) 체제로 분위기를 쇄신해 팀 리빌딩을 선언하고 시즌을 맞았는데, 11년 만의 '가을야구'를 바라보며 달린다. 최하위권 전력이라는 평가를 비웃으며 '반짝 돌풍'을 넘어, '판'을 흔들고 있다. 올해 구단 슬로건인 '판을 흔들어라'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 SK는 KBO리그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외국인 사령탑이 지휘하는 팀이다. 트레이 힐만 감독(55)은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 감독 경력, 지도 스타일로 늘 주목받는다. 올해는 힐만 감독의 계약 2년째, 마지막 시즌이다. 우승을 목표로 출발한 SK는 초반 두산과 1위 경쟁을 하다가 뒤처졌다. 지난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LG는 큰 변화를 줬다. 양상문 감독이 단장으로 옮겨가고, 류중일 전 삼성 감독(55)을 영입했다. '우승 DNA'를 이식하기 위한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이들 세 팀간의 순위 경쟁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세 팀 모두 1군 감독을 거친 단장이 뒤에 있다. 박종훈 한화 단장(59)은 LG, 염경엽 SK 단장(50)은 넥센, 양상문 LG 단장(57)은 롯데와 LG 사령탑 출신이다.
메이저리그식 '단장 야구'가 KBO리그에 뿌리를 내린 건 아니지만, 구단 주도의 '프런트 야구'가 대세인 것 만은 분명하다. 감독 출신 단장들의 유의미한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서상 단장이 감독보다 연장자라고 해도, 전면에 적극적으로 나서긴 어렵다. 현장과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여지가 있다. 또 선수, 지도자 출신이다보니 구단 전체를 총괄하는 전통적인 단장 역할이 아닌 운영, 스카우트 파트에 일이 한정돼 있다. KBO리그에 세 명뿐인 이들 감독 출신 단장들은 한 목소리로 "감독이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뒷받침 하는 게 내 역할이다"고 말한다.
지난 10월 취임해 첫 시즌을 보내고 있는 양상문 단장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운동장에 안 간다. 경기도 관중석 쪽에서 본다. 선수를 따로 만나는 일은 없다"고 했다. 현장과의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려는 의도다. 양 단장은 "구단 상황을 전달하거나 2군 선수 현황을 설명해야 할 때만 감독을 만난다"고 했다.
그런데 '뒷받침 한다'는 말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감독이 최일선에서 전투를 이끄는 '야전 사령관'이라면, 단장은 팀 선수단 아우르며 밑그림을 그리고, 지원하는 '총사령관'이다. 전력 구성에 가장 중요한 외국인 선수 선발, FA(자유계약선수) 영입, 트레이드를 최종 결정하고, 선수 육성을 책임진다. 이 부분에서 단장과 현장간의 밀접한 소통이 필요하다.
양 단장은 "외국인 선수 계약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세한 사항을 모두 감독과 공유하고 논의했다. 최종 결정은 단장이 하지만, 어디까지나 감독이 'OK'를 해야 이뤄진다"고 했다.
박종훈 단장은 3~4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상경했다. 주중 3연전의 마지막 날인 5일 퓨처스리그 경기가 열린 수도권 2군 구장을 찾았다. 미래, 예비 자원을 체크하기 위해서다. 지금, 현재도 중요하지만 단장은 조금 더 앞을 바라봐야 한다.
박 단장은 "감독 유경험자로서 감독이 현재 무엇을 고민하고, 필요로 하는 지 이해의 폭이 넓다는 게 장점인 것 같다. 우리 팀에 무엇이 필요한 지 파악해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 감독 출신 단장은 공통 분모가 있다. 고려대 야구부 선후배다. 박 단장이 78학번으로 양 단장 1년 위고, 염 단장은 87학번이다. 감독은 양 단장이 가장 빨랐고, 박 단장, 염 단장이 뒤를 이었다. 단장은 박 단장, 염 단장, 양 단장 순이다.
이들은 여러 인연으로 엮여 있다. 양 단장이 태평양 돌핀스 선수로 뛸 때 염 단장이 신인 선수로 입단해 2년을 함께 했다. 또 박 단장이 현대 유니콘스 1루 코치로 일할 때, 염 단장이 선수로 있었다. 박 단장은 "염 단장이 당시 주로 대주자, 대타로 활약했는데, 1루 코치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염 단장은 상대팀 선수, 특히 투수들의 볼 배합, 성향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박 단장이 LG 사령탑으로 있을 때 염 단장이 수비코치로 보좌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