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덕 한화 이글스 감독은 입버릇처럼 "주위 기대치가 너무 높아졌다. 우리 전력은 아직 100%가 아니다. 하루 하루 끈질기게 참고 버티는 중"이라고 말한다. 엄살이라는 주위 반응에는 매번 손사래를 친다.
대위기라고 걱정하던 6월은 무사히 지나갔다. 한화는 6월 들어 14승9패를 기록했다. 남은 경기에서 고전한다해도 목표했던 월간 5할 승률은 초과달성이다.
한화는 이미 2위 자리가 낯설지 않다. 지난 10년간 가을야구 한번 겪지 못했던 만년 하위팀이라고는 믿기 힘든 모습이다. 한화의 변신은 올시즌 프로야구 전반기 최고 반전 중 하나로 꼽힌다. 한화는 최근 30일중 20일 동안 2위 자리를 지켰다. 홈런군단 SK 와이번스와 투타 밸런스가 좋은 LG 트윈스를 따돌리고 있다. 27일 현재 45승32패(승률 0.584)로 3위 LG에 1.5게임 차 앞서 있다.
리빌딩으로 시작한 올시즌. 3월 2승5패(7위), 4월 12승10패(4위). 이때만해도 잠시 중위권에서 반짝하다 금방 내려올거라고 예상했다. 제라드 호잉은 상대 분석이 본격화되면 제자리를 찾을거라고 봤고, 달라진 송은범도 한 달짜리로 평가절하됐다. 한화팬들 사이에서도 미리 기뻐하면 알아서 제지하는 분위기가 만연했었다.
한화는 5월에 오히려 더 약진했다. 5월 한달간 17승8패로 월간 전체 승률 1위. 5월말 양성우(복사근 부상) 김태균(종아리 근육부상), 정근우(허벅지 안쪽 근육부상)가 빠지자 6월 위기론이 대두됐다. 당시 외국인 투수 제이슨 휠러와 배영수(2군에서 컨디션 조율중)의 부진까지 맞물리자 위기감이 고조됐다.
없어진 이를 잇몸이 대신하고 있다. 정근우의 공백 우려는 지난 6월 3일 1군에 합류해 연일 맹타를 휘두르고 있는 강경학이 거의 지웠다. 강경학은 21경기에서 타율 4할2푼3리 3홈런 15타점을 기록중이다. 수준급 수비는 덤이다. 호잉(타율 3할3푼6리 20홈런 69타점)은 주춤했던 5월을 넘어 6월 들어 다시 타오르고 있다. 배영수 대신 올라온 윤규진은 연일 호투중이다.
리그 최강 마무리 정우람을 중심으로 구성된 리그 1위 불펜진은 혹사없이 여름을 나고 있다. 일부 선수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큰 걱정이 없다. 나머지 선수들이 대신 출격해 며칠을 버티면 잠시 흔들렸던 투수들도 금방 제컨디션을 찾는다. 한화 불펜에는 평균자책점 1점대, 2점대 투수가 무려 6명이다. 장민재(1.38, 3승1패) 정우람(1.47, 4승23세이브), 박상원(1.95, 1승1패4홀드), 서 균(2.31, 1승1세이브7홀드), 송은범 2.86(4승3패1세이브6홀드), 이태양(2.93, 2승4홀드)까지. 타고투저가 본격화된 최근 수년간 이같은 철벽 불펜진을 가동한 팀은 드물었다.
한화는 상대를 압도하는 경기력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타이트한 승부가 훨씬 많다. 하위타선이 매우 허약하다보니 큰 점수 만들기가 쉽지 않다. 호잉과 이성열, 송광민이 잠잠하면 대책이 없다. 그럼에도 자주 이긴다. 때로는 필요 점수만 딱딱 만들어 이기고, 찬스에서 예상치 못한 영웅이 나타난다. 간혹은 달려서 이기고, 이도 저도 안되면 상대가 지칠 때까지 불펜이 버티고 버텨 이긴다.
모든 투타데이터를 종합하면 2위 성적에는 미치지 못한다. 팀타율은 2할7푼5리로 전체 8위다. 지난해 팀타율 2할8푼7리(5위)에서 후퇴했다. 마운드 힘이 허약한 방망이를 지탱한다고 해도 라인업 자체가 상대가 위압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선수구성만 놓고보면 타팀에 밀릴 때가 많다. 하지만 막상 한화와 맞붙은 상대팀은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호소한다. 수비 허점이 크게 줄었고, 베이스 러닝은 악착같다.
잦은 실수, 긴 슬럼프는 실력 저하를 의미한다. 연속되는 행운도 마찬가지다. 긴 관점에서보면 운은 공평하다. 행운이 한쪽에만 집중된다면 그것은 운이 아닌 실력이다. 그 실력을 콕집어 수치화 할수 없을 뿐이다. 이를 흔히 다른 말로 '저력'이라고도 한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