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악수와 포옹을 하는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 됐다. 첫 만남이 이뤄진 날, 쏟아져 나온 수많은 화제 중 하나가 북한의 대표 음식인 '평양냉면'이었다. 이날 서울시내 곳곳에 자리한 평양냉면식당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최근 남북 관계의 급진전으로 북한 음식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덩달아 우리민족의 대표 음식이자 세계적 건강식품인 북한의 '김치'에 대한 궁금증도 더해진다.
본래 기후적 특성으로 그 담그는 방법과 재료, 맛 등에 차이를 지녔던 남북의 김치는 분단 70년 동안 또 어떤 변천 과정을 겪었을까?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는 한편, 특별한 김치를 맛나게 담그는 레시피도 소개한다. 먼저 이번 회에는 우리 김치의 유래와 남북 김치의 차이에 대해 알아본다.이규복 기자 kblee341@sportschosun.com
우리 민족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김치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만들 수 있는 창의적인 저장 음식이다. 원래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철을 나기 위해 저장하던 방식이 점차 발달, 진화하며 완성됐다. 따라서 그 종류도 많고 다양하다.
조선시대 후기까지 겨울 김치의 주원료는 오이, 가지, 무 등이 주를 이뤘다. 또 봄과 여름철에는 산과 들에서 구할 수 있는 채소들이 주원료였다.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속이 노랗고도 하얀 속살을 가진 고소한 배추는 한반도의 토질에는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1800년대 말에야 우리 한반도에서도 김치담그기에 적합한 배추 품종이 개발됐다. '서울배추', '개성배추'로 불리던 '조선배추'가 그것이다.
분단 이후 남한은 농작물 종자 육종에 힘을 기울였다.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 등의 노력으로 대한민국 토양에 맞는 '결구형 배추'가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됐다. 북한은 아직도 반결구형인 서울배추 또는 개성배추와 유사한 장원추형 계통의 배추가 재배되고 있다.
▶김치, 남한은 양분화… 북한은 다양화
남한에서는 배추김치를 1년 내내 먹고 싶다는 소비자들의 열망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고랭지배추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하절기에는 중국 북부 서늘한 지역에서 생산 된 배추가 절임상태로 대량 유입되고 있다.
고랭지배추 재배와 김치냉장고의 등장과 함께 경제성이 우선되는 유통시장의 특성상 수익성 좋은 배추김치 중심의 거래가 이뤄진다. 이에 따라 남한의 김치 시장은 배추김치류(포기김치)와 무김치류(총각김치, 깍뚜기)로 집중되며 다양했던 계절김치는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다.
반면, 먹을거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북한에서 김치의 비중은 과거 남한의 1970년대 이전 수준과 비슷하다. 겨울철 1가구에 배추만 1톤씩을 배급해 줄 정도로 많은 양의 김장김치를 담그고 있지만 이것도 2~3월이면 동이 나거나, 남은 것은 모두 쉬어버리고 만다.
이 같은 사정으로 봄에는 산과 들의 나물을 캐서 참나물, 미나리, 시금치 등으로 물김치를 만들어 먹거나 가을에 짜게 저장해 뒀던 염장무를 헹궈 무김치를 만들어 먹는다. 여름에는 양배추, 토마토, 가지, 오이 등으로 김치를 만들어 먹고 있다.
북한은 6.25전쟁 이후 중국, 소련과의 교류가 긴밀해 지면서 한대성 작물인 양배추(가두배추), 파프리카(사자고추), 토마토(도마도), 콜라비(불뚝개), 레디시(빨간무), 샬롯(옥파) 등의 작물 재배가 많아져 이를 이용한 퓨전 김치류도 널리 보급됐다고 한다.
남한은 경제적 논리에 따라 다양성이 사라지고 양분화 된 반면, 북한은 냉장고 보급률이 낮고 육종기술이 낙후된 탓에 오히려 다양한 전통 김치문화가 보존 계승되고, 외래 채소를 활용한 창의성도 발휘돼 온 것이다.
▶맛의 차이는 양념과 숙성에서
남북한 김치 맛의 차이는 김치 양념과 담그는 법에 있다. 남북에 상관없이 전통적인 배추김치 양념인 '김치소'에는 고춧가루, 마늘, 파, 젓갈 등이 공통적으로 들어간다. 그 외에 생강과 무, 미나리, 갓 등의 채소와 찹쌀풀, 해산물 등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부재료다. 이외에 지역적, 경제적 환경 및 개인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재료들이 가감된다.
남한의 경우 경제적 여유로 김치에 넣는 양념의 양과 종류가 이전 보다 풍부해졌다. 반면, 양념의 양이 많지 않고 국물이 많은 것이 북한 지역 김치의 전통적 특징이다.
북한사람들은 배추가 속이 차지 않고 길이가 긴 치마처럼 퍼진 모양이라고 해 '치마배추'라고 부른다. 치마배추로 김치를 담그는 법은 우리와는 좀 다르다. 배추 크기가 들쑥날쑥 한데다 속이 성글어서 절인배추의 뿌리가 아래로 가도록 세운다. 이후 이파리가 옆으로 퍼지면 꼭대기 부분에만 김치소를 한 움큼 넣고 파란 잎 부분을 짚으로 동여 양념이 빠지지 않도록 한다.
고난의 행군 이후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며 김장김치에도 소금, 마늘, 고춧가루, 사카린 등 4종류 정도의 양념만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젓갈은 황해도 등 서해안 지역 일부에서 까나리젓갈이 조금 사용 되고 있다. 남한에서는 보편적인 재료인 생강은 재배 기온 특성상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가장 중요한 김치 양념인 고춧가루는 시장에서 소주병 뚜껑 단위로 거래 할 만큼 귀하고 비싼 재료다. 배추 1톤을 절였을 때 고춧가루 4~5Kg 정도(0.5% 내외)를 넣는데, 김치에 붉은색이 잘 나지 않아서 옥수수기름을 조금 떨어뜨려 색과 풍미를 높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북한은 추운 날씨 때문에 김치에 간을 세게 하지 않으며, 김치를 담근 지 3~4일 정도 지나 육수(소금물)를 붓기 때문에 숙성 시 시원한 맛이 난다. 짜지 않고 시원한 김칫국물에는 밥이나 면을 말아 먹기도 하는데, 길고 추운 겨울밤을 지루하지 않게 해줄 맛있는 야참이 된다.
남한은 소금물에 절반으로 자른 배추를 넣어 3~4시간 절인 후 꺼내 물에 헹궈 한쪽에 쌓아 물기를 뺀다. 물기가 빠진 절인 배추의 잎 사이사이에 준비한 김치 양념을 넣고 독에 담아 저장한다.
이외에 남한은 육수에 갖은 양념을 버무리는데 반해, 북한은 갖은 양념을 묻힌 배추를 며칠 정도 숙성시킨 후에 육수를 부어 국물이 많은 형태로 담근 것이 또 하나의 큰 차이점이다.
북한의 담백한 맛에 길들여진 새터민(탈북자)들이 남한 김치와 음식 맛이 강하고 양념이 많아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새터민들은 남북한 김치맛을 "남한은 양념이 너무 강해 음식 본연의 맛을 즐길 수가 없다. 북한은 열악한 환경에 양념을 많이 사용하지 못했지만, 고난의 행군 이전에도 역시 양념을 많이 첨가하지 않아 채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어서 더 맛있다"고 입을 모은다.
<도움말= 박채린 세계김치연구소 문화융합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