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기 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LG 트윈스의 사인 훔치기 논란으로 야구계가 시끄럽다. 18일 한 매체 보도로 인해 LG가 광주 KIA 타이거즈 원정 경기 중 선수단이 오가는 복도에 KIA 투수들의 구종별 사인이 적힌 종이를 붙여놨다.
'2018 리그규정' 제 26조 불공정 정보의 입수 및 관련 행위 금지 항목에 위배될 수 있다. '벤치 내부, 베이스코치 및 주자가 타자에게 상대투수의 구종 등의 전달 행위를 금지한다'고 정했다. 이 규정은 구두로, 아니면 팀 내 약속된 모션으로 타자에게 상대 사인을 전달하는 걸 금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정이다. 그동안 2루주자나 양쪽 베이스코치가 타자에게 사인을 알려준다며 상대하는 팀끼리 시비가 붙은 적이 자주 있었다. 예를 들어, 2루 주자가 상대 배터리 사인을 보고 몸쪽 공이면 고개를 정한 쪽으로 한 번 까딱 흔드는 등의 방식이다. 타자가 구종, 코스를 알고 치면 많이 유리해지는 게 야구다.
하지만 이렇게 덕아웃 내 문서로 사인에 대한 공지를 한 사례가 적발된 건 처음이다. 그래서 위 규정 하에서 이런 행위도 불법으로 간주되는 지 애매하다. 경기 중 사인을 훔쳤다기 보다는, 여러 자료 등을 통해 이미 파악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차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각 팀들은 경기 전 미팅 시간을 갖는다. 상대 타자, 투수 전력 분석을 한다. LG가 덕아웃에 공지해놓은 내용 정도는 다른 팀들도 이 미팅 시간에 거의 공유를 한다. 사인 뿐 아니라 특정 선수의 '쿠세' 등에 대해서도 활발히 토론하며 대처 방법을 찾는다. 이전 경기들을 분석했을 때 KIA 투수들이 일관되게 같은 동작을 취하고, 같은 구종을 던졌다는 게 KIA 내부적으로는 문제일 수 있다. 스스로 상대에 약점을 노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정보를 선수단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 정도는 선수들이 기억을 하고 경기에 임하는 게 맞다. 선수들이 이번 사례 정도의 정보량을 기억 못할까 친절하게(?) 종이에 적어 붙여준 것은 LG가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게 명백하다. '우리 선수들은 머리가 나빠 이 내용도 못외운다'는 사실을 스스로 만천하에 알린 꼴이다. 학창 시절 시험 볼 때를 생각하면 비교가 쉽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족집게 핵심 정보'를 입수해 공부하는 건 좋은데, 그 정보는 시험장에 오기 전까지 보고 말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정보를 사용했든, 안했든 시험장 안에 몰래 반입하는 건 '커닝'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선수들이 경기 중 계속 오가는 덕아웃 통로에 사인 정보를 붙여놓은 건 이와 비슷한 사례로 비교해볼 수 있다.
여기에 쓸 데 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LG는 이번 사태 발생 후 1루에서 도루를 시도하는 주자들을 위한 정보라고 한 발 뺐지만, 이 정보가 과연 도루를 할 때만 사용됐나 아니면 타석에 타자에게 전달하는 다른 경로가 있을까 의심을 받을 여지를 만들었다. 앞으로 LG 선수나 코치들이 그라운드 위에서 하는 모든 행동들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모든 플레이가 경직될 수밖에 없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