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감독은 어느 조에요? 여기서 슈퍼매치 2라운드를 해야 하는데…."(황선홍 서울 감독)
"서울의 단장님과 한 조가 됐네요. 적과의 동침인데, 골프에서라도 (서울의)기 좀 죽이려고 합니다."(서정원 수원 감독)
9일 경기도 용인 골드CC에서 열린 2018년 축구인 골프대회. 눈길을 끄는 조가 있었다. 황선홍 감독이 속한 5조 A, 서정원 감독이 속한 5조 B였다. 공교롭게도 5조 A에는 박창수 수원 단장, 5조 B에는 이재하 서울 단장이 자리했다. 감독과 단장 간 대리 슈퍼매치가 펼쳐졌다. 수원과 서울은 8일 슈퍼매치를 치렀다. 결과는 아쉬운 0대0이었다. 역대 최소 관중 속 역대 최악의 슈퍼매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감독은 맞대결을 하고 싶었지만, 작은 슈퍼매치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하지만 두 감독은 역시 숙명의 라이벌 답게 뜻하지 않은 곳에서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10번 홀(파3)이었다. "길고 짧고, 잘 맞았다 안 맞았다. 리듬이 꽝이네요." 황 감독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심기일전 하려는 황 감독은 어프로치를 위해 티잉 그라운드를 벗어났다. 황 감독이 떠난 자리에 서 감독이 나타났다. 골프채를 집어 든 서 감독은 앞서 황 감독이 티샷을 하면서 땅을 쳤다는 얘기를 듣고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티샷을 준비했다. 바로 그때, 10번 홀을 끝낸 황 감독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10번 홀은 티잉 그라운드에서 그린까지 약 150m. 황 감독은 멀리서 서 감독을 지켜봤다.
서 감독은 보란 듯이 티샷을 날렸다. '딱'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린을 향해 날아갔다. 너무 잘 맞은 것일까. 공은 그린에 맞고 뒤쪽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 공은 바운드가 되면서 황 감독을 간발의 차로 빗겨갔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황 감독. 서 감독을 향해 "경고야. 경고"라고 소리쳤고, 서 감독은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 거기 서 있는 사람이 잘못 아닌가요"라고 껄껄 웃으며 티잉 그라운드에 드러누웠다. 옆에 있던 이 단장은 '아찔한 샷'을 날린 서 감독을 향해 "일부러 그랬지?"라며 박장대소했다.
모처럼 필드에서 기분 전환을 했다. 그러나 전날의 아쉬움은 여전히 진하게 남아 있었다. 황 감독은 "내가 죄인이다. 팬들께 죄송하다. 할 말이 없다. 어렵다. 5월 5일에 다시 붙는데 그 때는 더 좋은 모습 보여드려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서 감독도 반전을 노래했다. 그는 "축구인 골프대회와 인연이 많다. 2년 전에 우승을 했는데 대회 직전 판정시비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그때 우승 후 잘 풀리면서 FA컵 우승까지 했다. 오늘도 기를 좀 받아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앞선 두 감독과는 달리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라운드에 나선 이가 있었다. 바로 김도훈 울산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8일 열린 K리그 5라운드에서 강원을 꺾고 올 시즌 첫 승리를 신고했다. 여기에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16강 조기 진출이라는 소기의 성과까지 달성했다. 승리의 기운을 이어간 김 감독은 4번 홀(220야드)에서 버디를 잡으며 상패로 비트코인을 받았다. '우와!' 주변에서 부러움 섞인 감탄사를 쏟아냈다. 비트코인을 손에 쥔 김 감독은 "더 이 악물고 해야 겠다"며 목소리에 힘을 줬다. 사실 김 감독 역시 축구인 골프대회에 기분 좋은 추억이 있다. 그는 "지난해 골프대회 우승하고, FA컵 우승을 했다. 올해는 김호곤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과 한 조에서 경기하는 만큼 기를 받아서 ACL 우승을 하고 싶다"고 웃었다. 김 감독의 기대 섞인 시선을 받은 김 전 부회장은 "열심히 기를 주고 있다"고 활짝 웃었다. 용인=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