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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우승]④'국보급 세터' 한선수, '★'달기 위해 11년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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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 이 세 글자를 얻기 위해 한선수(33·대한항공)는 11년을 기다렸다.

한선수 하면 따라오는 수식어가 있다. '국보급 세터.' 1m89의 장신. 스피드와 힘, 그리고 높이를 갖췄다. 천부적인 센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코트 위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시야와 상대의 허를 찌르는 대담한 볼 배급. 한선수는 국내 최고의 세터다.

배구선수 한선수의 삶. 무척이나 화려하다. 뛰어난 기량에 흠 잡을 대 없는 커리어. 2007년 대한항공에 드래프트 2라운드 2순위로 지명되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한선수는 '최고 세터'라는 말을 듣고 살아왔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나름의 아픔은 있었다. 뛰어나고 돋보이는 만큼 부담이 컸다. 에이스이자 세터의 숙명. 대한항공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책임은 한선수에게 쏠렸다. 시간이 갈 수록 부담의 무게는 더해졌다. 그 과정에서 한선수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 말들도 흘러 나왔다. 일각에선 '한감독'이라는 비아냥도 들려왔다. 여러 '썰'들의 뿌리는 하나였다. 최선을 다 하지 않는다는 것. 간절함이 없다는 것.

결국 성적과 관련돼있다. 대한항공은 대표팀급 자원을 다수 보유했지만, 최정상에 닿지 못했다. 그건 바로 챔피언. 플레이오프에서 고배를 마시기도, 설령 챔피언결정전에 나서더라도 고배를 마셨다. 그렇게 맞이했던 2016~2017시즌. 한선수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말들에 마음을 닫고 배구만 봤다. 성공만 생각했다. 챔피언만 꿈꿨다.

분위기는 좋았다. 박기원 감독의 지도 아래 한 층 강해진 전력으로 대한항공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눈 앞에 다가온 듯 한 챔피언의 이름. 그러나 이번에도 놓쳤다. 현대캐피탈에 2승3패로 무너졌다. 한선수의 억장도 무너졌다.

겨우내 이를 갈았지만, 찾아온 2017~2018시즌 초반 대한항공은 흔들렸다. 리그 1라운드 순위는 5위. 2라운드 들어 3위로 올라섰지만 승점 차가 꽤 컸다. 당시 선두 삼성화재는 승점 28점. 대한항공은 18점, 무려 10점 차였다. 어렵게 지탱해오던 한선수의 평정도 흔들렸다. 때는 지난해 12월 7일 한국전력과의 리그 3라운드 경기. 대한항공은 트리플크라운(후위공격, 블로킹, 서브 3개 이상)을 작성, 홀로 36득점을 때려넣은 가스파리니의 활약을 앞세워 세트스코어 3대1 승리를 거뒀다. 기분 좋은 승리. 하지만 웃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한선수였다. 한선수는 울었다. 억눌린 감정이 터졌다. "팀에 보탬이 돼야 하는데 못 해서 팀원들에게 미안했다." 박 감독은 "나도 한선수도 너무 마음고생 심했다. 선수들이 너무나 큰 부담을 지고 이렇게 견뎌오고 있다"고 다독였지만, 한선수의 뜨거운 눈물은 한참을 흘러내렸다.

반전의 눈물이었다. 가슴 속 응어리를 눈물에 담아보낸 한선수는 이후 무서울 정도로 냉철한 경기 운영으로 대한항공을 이끌었다. 백미는 5라운드. 대한항공은 한선수의 지휘 아래 라운드 6전 전승을 했다. 파죽지세. 고비처에서 넘어지던, 위기를 버티지 못하던 그런 대한항공은 사라졌다. 한선수가 중심을 잡았다.

대한항공은 삼성화재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1대3으로 패했지만 내리 2승을 챙겼다. 이어진 현대캐피탈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첫 게임을 풀세트 접전 끝에 내줬다. 졌지만 선수들이 승부에 열렬히 집착했다. 특히 한선수가 그랬다.

그 투지로 대한항공이 다시 일어섰다. 2, 3차전을 셧아웃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더니 30일 인천계양체육관에서 치러진 4차전에서도 승리, 챔피언 타이틀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부담, 의심, 비아냥에도 한선수는 굴하지 않았다. 당당히 실력으로 보여줬다. 그토록 꿈꿔왔던 챔피언. 한선수는 그 이름 하나를 위해 11년을 버티고 또 버텨왔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