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에너지가 좀 많아서…."
민유라(23)는 자타공인 '흥부자'다. 그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웃음이 넘친다. 그에게 올림픽의 중압감은 없는 듯 했다. 수많은 카메라가 모인 입촌식에서 춤을 추고, 선글라스, 하회탈 등 각종 소품까지 준비하며 어떻게 하면 더 튈 수 있을까 연구한다. 의상의 끈이 풀리는 아찔한 위기 역사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올림픽은 그의 끼를 맘껏 펼칠 수 있는 무대다.
#"못생겼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거울보라고 했죠."
'쇼트트랙의 막내' 김예진(19)은 할말은 한다. 계주 훈련 중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언니들에게 의견을 서슴없이 낸다. 김선태 감독이 "언니들이 쫄았다"고 말했을 정도. 지난 8일 북한 정광범(17)과 훈련 도중 외모를 가지고 티격태격했던 일화를 소개해 믹스트존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무거워질 수 있었던 남북 합동 훈련을 신세대만의 감각으로 허물어뜨렸다.
#"고다이라 말고 제 이야기 해주세요."
'빙속여제' 이상화(29)의 화끈한 작심발언이었다. 그는 "최근 기사를 보니 고다이라 얘기 밖에 없더라.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인만큼 나한테 초점을 맞춰달라. 내가 열심히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두려움도, 긴장감도 없었다. '난 나야', '내 경기장, 내가 왔드아!' 세번째 올림픽에 나서는 이상화는 SNS에서 자신만의 스웨그를 뽐내고 있다.
'평창 세대'들이 '올림픽 DNA'를 바꾸고 있다. 이들은 솔직당당하고 위풍당당하다. 인터뷰나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생각을 주저없이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안다. 유쾌하고 자신만만하다. 어지간한 일에 주눅 들지 않고, 누구를 만나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는다. 아픔을 보란 듯이 이겨내고 꿈을 이뤘다. 저마다의 올림픽을, 저만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
지난 세월 선수들에게 올림픽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금메달이 아니면 '죽음'이었다. 국가를 위해, 개인을 위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올림픽을 준비했고, 그렇게 만난 올림픽은 운명이 걸린, 부담스러운 무대였다. 선수들의 표정은 전쟁에 나서는 군인처럼 비장했고, 인터뷰는 경직될 수 밖에 없었다. 자연히 웃음은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선배들이 입버릇처럼 말했던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를 '진짜로' 즐기고 있다. 초반 이슈였던 컬링 믹스더블의 장혜지-이기정이 사랑을 받았던 것은 강호를 상대로도 씩씩하게 싸우는 그들의 '유쾌함' 덕분이었다. 언제나 금메달 부담감에 시달렸던 쇼트트랙 대표팀은 훈련 도중 형을 괴롭히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정치적 이슈 속 함께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대회 중 함께 바닷가 나들이를 떠나기도 했다.
첫 단체전에 나선 피겨 대표팀은 달라진 선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예다. 차준환, 최다빈, 민유라-겜린, 김규은-감강찬, 모두가 처음으로 올림픽에 나서는 '초짜'들이었지만 '긴장' 대신 '즐거움'을 품었다. 점수는 상관없었다. 페어 종목 최하위를 기록했던 김규은-감강찬은 "기분 좋았고, 재밌었다"고 활짝 웃었다. 최다빈이 '개인 최고점'을 경신하자 진심어린 축하를 건냈다. 마지막까지 함께한 이들은 끝내 9위에 머물며 예선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기에 웃음을 잃지 않았다.
평창올림픽을 즐기는 이들에게서 2018년 대한민국은 또 한번 희망을 발견한다. 역시 진정 즐기줄 아는 이가 진짜 챔피언이다.
강릉=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