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앤드레이드, FA 규정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롯데 자이언츠와 넥센 히어로즈가 사인앤트레이드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넥센에서 뛰며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채태인이 롯데로 가는 게 골자다. FA 계약이 아니라 롯데가 넥센에 선수든, 돈이든 주는 식이 될 예정이다.
롯데가 채태인을 원했다면 FA 계약을 하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어려운 방법을 선택하는 것일까. 양 구단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는 채태인이라는 선수가 탐은 나지만, 보상금 9억원을 넥센에 지불하며 데려올 여력은 안됐다. 선수에게도 어느정도 몸값을 보장해줘야 하는 가운데, 보상금까지 주면 지출이 너무 커졌다.
하지만 채태인이 넥센과 사인을 한 뒤, 트레이드 형식을 취하면 보상금 문제가 해결된다. 넥센은 유망주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보상금 9억원보다는 적은 현금도 더해질 수 있다. 지난 시즌 넥센이 윤석민(kt 위즈) 김세현(KIA 타이거즈) 등을 트레이드 하며 유망주를 수집했는데, 여기에 돈이 오가지 않았다고 믿는 야구인은 아무도 없다. 넥센은 지난해 다른 구단에도 선수 트레이드를 제시하며 유망주와 돈을 요구했었다. 넥센 입장에서는 비싼 보상금 때문에 박병호 가세로 활용도가 떨어질 채태인이 팀을 못옮기자 사인앤트레이드 제안이 솔깃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인앤트레이드가 편법으로 악용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채태인이 넥센과 협상하고 계약해 트레이드 될 일은 절대 없다. 이미 롯데쪽과 몸값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거나, 했을 것이다. 롯데는 2년이든 3년이든 사실상의 FA 계약에 준하는 금액을 채태인에 안길 것이다. 보상선수와 보상금 문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이런 편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FA 계약을 하면 20인 보호선수 외 1명을 내줘야 하지만, 이렇게 구단간 합의를 하면 협상을 통해 선수 유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런 사인앤트레이드는 남자프로농구에서 이미 여러차례 악용된 사례가 있다. 농구는 FA 선수가 이적할 시 보호선수가 이적 당사자 포함 3명이었다. 보상선수 출혈이 너무 뼈아팠다. 2014년 5월 안양 KGC에서 FA로 풀린 김태술이 전주 KCC 이지스로 팀을 옮겼다. 강병현, 장민국과 사인앤트레이드 형식을 취했다. 하지만 김태술은 KGC가 아닌 새 팀이 될 KCC와 사실상의 FA 협상을 했다. 이렇게 사인앤트레이드를 해 KCC는 보상선수 개념을 주축 선수가 아닌 장민국으로 막은 꼴이 됐다.
시작이 어렵다. 그래서 이번 사인앤트레이드가 성사되면, 앞으로의 FA 시장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인앤트레이드가 성행할 수 있다. 중저가 FA 선수들을 두고 구단들이 이런 편법을 쓸 게 뻔해진다. FA 등급제 등 제도적 보완이 하루 빨리 필요해 보인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