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중국 허베이성 주니어 대표 1군 출신 열여섯 소녀는 '혈혈단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올림픽, 국가대표 꿈은 그만큼 간절했다.
10년, 지난한 인고의 세월이 흘렀다. 한국말이 서툴던 '선머슴' 소녀는 이제 웬만한 한국어쯤 척척 받아치는 어여쁜 숙녀가 됐다. 2018년, 스물여섯의 대한민국 여자탁구 국가대표 전지희(26·포스코에너지)가 생애 첫 세계선수권을 꿈꾼다.
전지희는 지난달 27일, 국내 최고 권위의 2017 신한금융 한국탁구챔피언십 제71회 전국남녀 종합탁구선수권 여자단식 결승에서 '라이벌' 양하은(24·대한항공)을 4대 1(11-8, 4-11, 11-8, 11-8, 11-9)로 꺾었다.
2015년 이후 2년만에 단식 우승 트로피를 찾아왔다. 만족하지 않았다. "아직 부족하다.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았다"는 말을 반복하더니 "나는 더 큰 목표가 있다"고 했다.
'왼손 셰이크핸더' 전지희는 김형석 포스코에너지 감독의 권유로 2008년, 한국 귀화를 택했다. 연습생으로 3년을 보낸 후 2011년 일반 귀화시험 끝에 한국인이 됐고, 귀화선수 규정에 따라 또 3년을 기다려 2014년에야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서효원 양하은과 함께 국가대표의 꿈을 이뤘다. 에이스 김민석과 함께 혼합복식 동메달도 목에 걸었다. 2015년 광주유니버시아드에선 혼합복식 금메달, 여자복식 동메달을 따냈다. 2016년 리우올림픽 무대를 밟으며, 올림피언의 꿈도 이뤘다. 지난해 타이베이유니버시아드에선 사상 첫 단체전, 단식 금메달 등 3관왕에 올랐다.
아직 못다 이룬 단 하나의 꿈, 그녀의 눈은 새해 '큰 목표', 세계선수권을 향해 있다. 세계선수권 현장에서 지난 몇년간 전지희는 줄곧 '연습 파트너'였다. 귀화 후 7년간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수 없다는 국제탁구연맹(ITTF) 규정에 발이 묶였다. "같이 뛰고 싶을 텐데"라는 위로에 "괜찮아요, 금방 지나가요"라며 생긋 웃었다.
여자대표팀은 2014년, 2016년 세계선수권(단체전)에서 16강 벽을 넘지 못했다. 전지희는 동료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이를 악물었다. 10대 소녀가 20대 중반의 숙녀가 된 긴 세월동안, 그녀에게 기다림은 일상이었다. 조급해 하거나 속상해 하지 않았다. 그저 좋아하는 탁구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일이 즐겁고 감사했다. "세계선수권에 나가려면 7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길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세계선수권은 못나가도 오픈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거기서 세계적인 선수들도 만났다. 그래서 정말 행복했다. 괜찮았다. 충분히 행복했다." 10년의 기다림, 전지희는 마침내 오는 4월 스웨덴 할름스타트 세계선수권에 나설 자격을 얻었다.
김형석 포스코에너지 감독, 전혜경 코치는 전지희에게 스승이자 가족이다. '딸'의 첫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아낌없는 지원에 나섰다. 포스코에너지 탁구단은 중국 출신 장첸 코치를 전격 영입했다. 세계랭킹 6위, '일본 에이스' 히라노 미우를 키워낸 젊고 능력 있는 코치다. 김 감독은 "장첸 코치는 도전적이고 적극적이다. 중국 탁구의 노하우와 데이터를 꿰고 있다. 일본에서 히라노의 성장을 이끌었듯이 한국에서 전지희의 성장을 돕고 싶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연습벌레 '전지희와 장첸 코치의 탁구 열정이 시너지를 내고 있다. 치밀한 전략으로 유니버시아드 3관왕을 합작했다. 연결과 지구전을 잘하는 선수로 통했던 전지희에게 장첸 코치는 빠르고 강력한 공격 탁구를 주문한다. 전지희 역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세계 여자탁구가 많이 발전했다. 옛날과 치는 게 다르다. 속도도, 강도도 다르다. 세계 수준에 따라가야 한다. 하나씩 배우고,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전지희는 해야할 일을 알고 있다. "종합선수권 우승이 기쁘긴 하지만 나는 더 큰 목표가 있다. 할 일이 많이 남았다. 감독님도 회사도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신다. 해달라는 걸 다해주신다. 올해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 2020 도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 여자탁구가 다시 4강권에 진입하도록 돕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목표"라고 또렷하게 말했다.
귀화선수에 대한 탁구계의 의견은 분분하지만, 한국 여자탁구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은 하나다. 김 감독은 "지희가 처음으로 출전하는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여자탁구가 다시 메달권에 진입하도록, 나와 팀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