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2017년 여자동아시안컵에 참가하 김광민 북한 여자 대표팀 감독과 선수들이 줄곧 되뇌인 말이다. 안방인 평양에서 가진 2018년 요르단 여자아시안컵 지역예선에서 북한은 5만 관중 앞에서 윤덕여호를 상대했다. 그러나 1대1 무승부에 그치면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한국보다 몇 수 위'를 자부했던 북한 여자 축구의 자존심에 상처가 단단히 났다. 김 감독은 지난 8일 중국과의 대회 첫 경기서 승리한 뒤에도 "4월과 같은 결과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전에 온 신경을 쓰고 있음을 드러냈다.
빈말이 아니었다. 윤덕여호는 11일 일본 지바의 소가스포츠파크에서 가진 북한과의 대회 2차전에서 0대1로 패했다. 앞선 일본전에서 2대3으로 패했던 여자 대표팀은 북한전에서도 패하면서 남은 중국전 결과와 관계없이 '대회 첫 우승'이라는 목표가 좌절됐다.
윤덕여 여자 대표팀 감독은 "그동안 북한전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했지만, 이번이 기회"라며 승리를 다짐했다. 북한은 중국전보다 더 단단했다. 중국전을 벤치에서 시작했던 '기대주' 승향심(평양)이 선발 라인업에 섰고 멀티골의 주인공 김윤미(4.25)가 원톱으로 나선 북한은 경기 초반부터 패스 플레이에서 윤덕여호를 압도했다. 윤 감독은 섀도 스트라이커 이민아(현대제철)을 축으로 한채린(위덕대) 유영아(스포츠토토) 장슬기(현대제철)를 앞세워 수비 뒷공간을 노렸으나 허사였다. 여자 대표팀은 전반전 단 한 개의 슈팅도 시도하지 못할 정도로 압도 당했다. 윤 감독이 전반 막판부터 적극적으로 교체카드를 빼들었으나 모두 허사였다. 여자 대표팀은 후반전 전방 패스를 활용하면서 활로를 만들기 위해 애썼지마 오히려 북한의 역습에 수 차례 위기를 맞으며 결국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선수 시절부터 '남북통일축구' 등으로 윤 감독과 우정을 쌓아온 김 감독 역시 이날만큼은 '친구'가 아닌 '적'이었다. 지난 6일 대회 기자회견 당시 휠체어에 의존할 정도로 다리를 절뚝이던 김 감독은 이날 90분 내내 벤치라인에 서서 선수들을 독려했다. 못마땅한 장면이 나오면 '불호령'을 하기 일쑤였다. 전반 18분 오른쪽 측면에서 김은하(월미도)가 올린 크로스를 김윤미가 문전 오른쪽에서 헤딩슛으로 연결, 볼이 골포스트 왼쪽에 맞고 들어가자 두 팔을 치켜들며 환호하는 등 시종일관 적극적이었다.
윤덕여호는 후반 막판 총공세에 나서 북한 골문을 조준했다. 그러나 마무리까지 이어지지 못해면서 '슈팅 0개'로 고개를 떨궜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북한 선수단은 그라운드로 달려나와 얼싸 안으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마치 '월드컵 우승' 우승보다 더 값진 성과를 얻은듯한 '기묘한' 풍경이었다.
지바(일본)=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