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경기도 이천 사우스스프링스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KLPGA 시즌 최종전 ADT캡스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18번홀(파4). 마지막 대회, 마지막 홀을 상징하듯 가을 단풍을 물들였던 해가 홀 너머 산자락 뒤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산 그림자가 반쯤 진 그린 위에서 지한솔(21)이 챔피언 퍼트를 성공시킨 뒤 양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생애 첫 우승.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도록 옥죄며 한조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친 김지현2(26)가 물을 뿌리며 축하의 마음을 전했다. 물세례를 받기에 쌀쌀한 날이었지만 지한솔은 추울 틈이 없었다.
마지막 대회라 더욱 특별했던 ADT캡스 챔피언십. 많은 의미를 남겼다. 지한솔의 생애 첫우승과 이정은6(21)의 전관왕 달성, 장은수의 신인왕 등을 확정지으며 시즌과 함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생애 첫 우승 지한솔, "부담 많았어요."
지한솔에게 시즌 마지막 대회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3라운드 내내 보기 없는 6언더파씩 18언더파, 198타로 디펜딩 챔피언 조윤지(26)를 2타 차로 제치고 데뷔 3년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18언더파는 올시즌 이정은6가 보유한 최소타수 우승 타이기록이다.
2014년 KLPGA에 데뷔한 지한솔은 최고 유망주였다. 화려한 아마추어 경력으로 주목받았다. 기대만큼 계약금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너무 큰 스포트라이트가 부담이 된걸까. 첫해 상금랭킹 25위, 지난해 23위, 그리고 올해도 이 대회 전까지 29위 머물며 아쉬움을 남겼다. 김지현2에게 14번 홀에서 역전을 당하면서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큰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지한솔의 멘탈은 강했다. 호락호락하게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15번(파4)에서 내리막 롱퍼팅으로 버디를 잡아내며 16언더파로 다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16번홀이 승부처였다. 지한솔은 3번째 샷을 그린 오른쪽 경사면에 떨어뜨려 홀에 완벽하게 붙여 버디를 잡아내며 다시 1타 차로 앞섰다. 반면, 김지현2의 3번째 샷은 홀 왼쪽으로 약간 당겨지며 파 세이브에 그쳤다. 분위기를 탄 지한솔은 17번홀(파3)에서 완벽한 샷으로 홀 옆에 세우며 3홀 연속 버디로 쐐기를 박았다.
조윤지는 17,18홀 연속 버디 등 이날 보기 없이 버디만 7개를 잡아내며 맹 추격전을 펼쳤지만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지한솔은 우승 후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재계약 단계여서 올해…"까지 이야기 하다 말을 멈췄다. 목이 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울먹임 끝에 가까스로 한마디를 했다. "부담이 많았어요." 상상하지 못할 부담을 이겨내고 지한솔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새로운 골프인생의 출발이다.
▶전관왕 달성 이정은의 야망, "웨지, 퍼터만 가다듬으면…"
'대세' 이정은(21)은 이날 2오버파 74타로 최종합계 1언더파로 공동 49위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 대회 전까지 유일하게 미확정 분야였던 평균타수에서 1위(69.79타)를 지키며 대상, 상금왕, 다승왕, 평균타수 1위 등 전관왕을 확정했다. 비록 이번 대회에서는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2017년은 명실상부한 '이정은의 해'였다.
KLPGA투어에서 4개 개인 타이틀을 석권한 것은 이번이 8번째다. 이정은은 전관왕을 세차례 차지한 신지애(29)를 비롯, 서희경(27), 이보미(29), 김효주(22), 전인지(23)에 이어 다섯번째 전관왕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신인왕을 받은 이정은은 이로써 인기상을 뺀 KLPGA투어 개인 타이틀을 모두 받게 됐다. 이정은은 올시즌 4승으로 최다승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단 한번도 컷 탈락이 없이 27차례 대회에서 무려 20차례나 톱10에 입상하는 꾸준함을 과시했다.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실을 찾은 이정은은 "올 시즌 전 목표 잡은 게 상금 10위 안에 드는 것이었는데 너무 많은걸 이뤄 가슴이 벅차다"며 "아쉽게 놓친 대회도 많았는데 웨지와 퍼터를 가다듬어 내년에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신인왕' 확정 장은수, "정은 언니 비슷하게라도"
루키 장은수(19)는 이날 11언더파 205타로 공동6위를 기록하며 신인왕을 확정했다. 이로써 장은수는 박민지(19)를 큰 포인트 차이로 앞서며 생애 단 한번 뿐인 신인왕을 확정했다. 장은수는 올해 우승은 없었지만 7차례 톱10에 입상하는 등 꾸준한 포인트를 쌓으며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이로써 KLPGA투어에는 3년 연속 우승이 없는 선수가 1승을 올린 라이벌을 제치고 신인왕에 오르는 기록이 이어지게 됐다. 2015년 신인왕 박지영(22)은 우승 없이 1승을 올린 최혜정(26)을 제쳤고, 작년에는 이정은(21)이 초정 탄산수 용평리조트오픈 챔피언 이소영(20)을 제치고 신인왕을 차지했다.
장은수는 "한번밖에 할 수 없는 신인왕을 차지해서 너무 기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지난해 신인왕에 이어 올해 대상을 차지한 이정은과의 궤적이 비슷하다는 말에 손사래를 치면서도 "주위에서 정은 언니처럼 되라고 하시는데 언니 만큼은 몰라도 비슷하게라도 되고 싶다"며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 "체력훈련을 열심히 했는데도 올해 힘들었다. 체력관리를 잘해서 내년에는 우승 한번 해보고 싶다"고 목표를 분명히 했다.
이천=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