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지천명 아이돌' 설경구의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설경구는 지난 25일 열린 제54회 대종상영화제에서 범죄 액션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 변성현 감독, CJ엔터테인먼트·풀룩스 바른손 제작)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가장 유력시 점쳐졌던 휴먼 영화 '택시운전사'(장훈 감독, 더 램프 제작)의 송강호를 꺾고 무려 15년 만에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꿰찬 것.
범죄조직의 일인자를 노리는 남자와 세상 무서운 것 없는 패기 넘치는 신참의 의리와 배신을 그린 '불한당'은 지난 5월 개최된 제70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였다. 특히 설경구는 '불한당'에서 모든 것을 갖기 위해 불한당이 된 남자 재호로 역대급 파격 변신을 시도,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대종상 남우주연상이라는 결실을 보았다.
그간 '박하사탕'(00, 이창동 감독) 김영호, '오아시스'(02, 이창동 감독) 종두, '공공의 적'(02, 강우석 감독) 강철중, '해운대'(09, 윤제균 감독) 최만식, '감시자들'(13, 조의석·김병서 감독) 황반장 등 매 작품 완벽히 체화된 캐릭터로 '인생 연기'를 펼친 설경구. 데뷔 때부터 충무로 '연기 신(神)으로 꼽혔던 그의 이번 대종상 남우주연상 수상은 유독 더 많은 의미와 여운을 남긴다.
한때 대중이 가장 믿고 보는 배우였던 설경구. 하지만 '소원'(13, 이준익 감독) 이후 '나의 독재자'(14, 이해준 감독) '서부전선'(15, 천성일 감독) '루시드 드림'(16, 김준성 감독) 등 흥행 고전을 면치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작품 선택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원인은 '설경구답지 않은' 연기였다. 늘 기대치 이상의 연기를 보여줬던 터라 관객의 실망감은 더욱 컸고 그렇게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이렇듯 한동안 슬럼프에 빠진 설경구. 그를 각성하게 만든 작품은 바로 범죄 스릴러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원신연 감독, 그린피쉬 제작)이다. 사실상 '살인자의 기억법'은 '불한당' 개봉이 한참 지난 후인 지난 9월 관객을 찾았지만 촬영 시점으로는 '불한당' 보다 앞서 찰영된 작품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은퇴한 연쇄살인범 김병수를 연기한 설경구는 기억과 망상을 오가며 무너져가는 남자의 혼란을 실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 분장 대신 10kg 이상을 감량하며 극한의 연기 변신을 시도했고 이는 '갓(God) 경구'의 부활을 알리는 시발점이 됐다. 이후 '불한당'에서는 전무후무한 치명적인 나쁜 남자 재호로 입체적인 인물을 만든 설경구. 등 돌린 관객까지 사로잡으며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스포츠조선과 인터뷰에서 "내 연기를 보는데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웠고 창피했다"며 스스로 슬럼프를 고백한 설경구. '공공의 적' 이후 15년 만에 수상한 대종상 남우주연상은 혹독한 자기 검열에 돌입한 설경구의 인간승리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스포츠조선DB,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