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이 많이 긴장하셨었나봐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전주 KCC 이지스의 경기가 열린 18일 인천삼산체육관. 양팀은 개막 전 우승후보로 손꼽혔으나, 나란히 시즌 첫 경기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후 서로를 마주하게 됐다. 전자랜드는 개막전에서 서울 삼성 썬더스에 대패했던 안양 KGC에 무기력하게 졌고, KCC는 하위권으로 분류된 원주 DB 프로미에 발목을 잡혔다.
전자랜드는 외국인 센터 아넷 몰트리(2m6)가 부진하며 상대 오세근, 데이비드 사이먼에 골밑을 점령당해 81대97로 힘없이 패하고 말았다. 몰트리는 KGC전 22분을 뛰며 리바운드는 9개를 걷어냈지만, 득점이 2득점에 그쳤다. 얼마나 무기력했으면, 이 한 경기에 조기 교체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유 감독은 이날 경기를 앞두고 "개막 전 연습경기에서 좋아지나 했는데, 첫 경기라고 그 분이 많이 긴장하셨었나보다"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어 유 감독은 "일단 오늘 경기(KCC전) 포함 이번 주까지는 봐야할 것 같다. 확실한 빅맨이 있으면 당장 교체를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대안이 마땅치 않다. 고민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득점이 안되면 수비와 리바운드에서라도 힘써달라고 했다. 몰트리도 열심히 한다고 했다"고 했다.
유 감독의 고민을 덜어주고 싶었을까. 아니면 교체 위험 분위기를 감지해서였을까. 몰트리는 KGC전과 180도 다른 선수가 됐다. 몰트리는 이날 경기 31득점 12리바운드 3스틸을 기록하며 팀의 98대92 승리에 일등공신이 됐다. 1쿼터부터 주특기로 꼽힌 미들슛이 계속해서 림을 갈랐다. 상대 찰스 로드, 하승진 장신 숲 사이에서도 열심히 리바운드를 따냈다. 승부처인 3쿼터에서는 속공에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해 풋백 득점을 2개나 올렸다. 조쉬 셀비, 박찬희 등 가드들과의 2대2 플레이도 손발이 척척 맞았다. 공-수 모두에서 나무랄 데 없는 플레이였다. 경기 전 KCC 추승균 감독이 "몰트리의 첫 경기를 봤는데 안들어가서 그렇지 슈팅의 볼줄은 좋더라. 미들슛이 좋은 선수라고 들었다. 오늘 우리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일 줄 모른다"고 했는 데 그 걱정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반대로 KCC는 찰스 로드 때문에 울어야 했다. KCC 추승균 감독은 1쿼터 상대 유도훈 감독의 허를 찔렀다. 유 감독이 안드레 에밋 전담 수비수로 데뷔 첫 출전하는 박봉진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에밋을 대신해 로드를 투입한 것이다. 로드와 하승진을 동시에 내보내 초반부터 높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안에서 몰트리와 강상재가 개의치 않고 득점을 해냈다. 1쿼터에만 강상재 10점, 몰트리 9점을 올렸다. 로드는 승부처이던 3쿼터 10분을 뛰며 무리한 공격을 하며 단 1점도 넣지 못해 쿼터 종료 후 점수차가 12점 벌어지는 데 원흉이 되고 말았다. 공격은 그렇다 쳐도, 수비와 백코트에서 허점을 드러내며 상대 센터들에게 많은 득점을 허용했다. 몰트리 뿐 아니라 강상재도 22점을 몰아쳤다.
KCC는 4쿼터에만 18점을 집중시킨 에밋의 폭풍같은 득점에 마지막까지 추격전을 벌였지만, 경기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91-89로 전자랜드가 앞서던 종료 28초 전 김상규의 3점슛이 쐐기포였다.
인천=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