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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과 품격, '거인'이 된 김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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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제는 개발 속도가 워낙 빨라 1~2년이면 풍광이 바뀐다고 하니, '옛 속담'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전히 '10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심리적 무게감은 꽤 크다. 또 실제로 사람이나 사물의 10년 전과 후를 나란히 놓고 보면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걸 알 수 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KIA 타이거즈의 주전 유격수, 그리고 2017시즌 타격왕 김선빈. 그를 보면서 세월의 흐름과 변화의 크기를 절감하게 된다. 10년 전의 그를 알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를 바라본다. 변화라는 게 누구에게나 늘 좋은 건 아니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김선빈은 지난 10년간 더 커졌고, 더 성숙해졌다. 좋은 변화가 일어났다.

2007년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아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 당시 화순고 에이스이자 4번 타자였던 김선빈은 대표팀에서는 3루수를 맡았다. 키는 작았어도 몸은 단단했다. 140㎞ 중후반의 강속구를 예사로 던지는 강한 어깨를 갖고 있었다. 경쾌한 풋워크, 정확한 송구. 대표팀에서의 타격은 평범했다.

승승장구하던 대표팀은 결승전에서 대만에 0대1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무는데, 하필 그 1실점이 김선빈의 송구 실책에서 비롯됐다. 2회말 2사후 린웨이팅의 내야 땅볼 타구를 김선빈이 1루에 악송구하며 타자 주자를 2루까지 보냈고, 곧바로 후속 적시타가 터져버렸다. 그게 이 경기의 유일한 득점. 경기가 끝난 뒤 '소년' 김선빈은 눈물을 훔쳤다.

이제 20대 중반의 청년이 된 김선빈에게서 10년전 눈물을 훔치던 '소년'의 모습을 찾을 순 없다. 키는 같은데 몸이 바뀌었다. 프로에 걸맞은 체력과 힘을 키우기 위해 시작한 웨이트 트레이닝, 그리고 벌크 업. 약간 과장되게 표현하면 10년 전 보다 몸이 두 배쯤 커졌고, 그만큼 더 단단해졌다.

하지만 몸집만 커진 건 아니다. 실력도 그만큼 쑥쑥 커졌다. 10년 전, 그를 향해 "프로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한 이도 있었지만 이제 김선빈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뛰어난 타격 솜씨를 지닌 타자다. 자기 힘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게다가 인격의 크기 역시 몸집에 비례해 커진 듯 하다.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돌아온 프로 무대에서 생애 첫 타격왕과 함께 팀의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쥔 순간. 김선빈은 성취에 대한 기쁨을 아끼고, 라이벌에 대한 예의를 먼저 보였다. 3일 경기를 마친 후 최후까지 타격왕 경쟁을 펼친 1년 후배 두산 박건우를 향해 "좋은 경쟁자였다. (박)건우 덕분에 마지막까지 타격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서 "경기 중에 다쳤다는 소식을 들어 마음이 좋지 않다.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먼저 말했다.

타이틀 홀더가 보여줄 수 있는 경쟁 상대에 대한 최선의 예우다. 또 김선빈의 그릇이 어느 정도로 커졌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몸집과 실력 뿐만 아니라 인격의 크기까지. 김선빈은 지난 10년간 정말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이제 김선빈은 새로운 준비를 시작했다. 2009년에 이어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타격왕 타이틀, 정규시즌 우승 같은 성취는 일찌감치 내려놓고, 차분히 한국시리즈 모드에 들어갔다. 과연 그가 다시 한국시리즈 우승 그라운드의 주역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