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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토리]이승우, 데뷔전 전후 48시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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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졌다. 그리고 이내 설레발이 될지도 모른다며 신중함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리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강한 임팩트를 맛봤다. 동시에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현실감도 맛봤다.

이승우(헬라스 베로나)가 드디어 성인무대에 데뷔했다. 24일 오후(현지시각) 이탈리아 베로나에 있는 스타디오 마르크 안토니오 벤테고디에서 헬라스 베로나와 라치오의 2017~2018시즌 이탈리아 세리에A 6라운드 경기가 열렸다. 이승우는 팀이 0-3으로 지고 있던 후반 25분 교체로 출전해 20분 가량 뛰었다. 이승우의 성인무대 데뷔 무대 이틀전부터 베로나로 날아가 현장에서 취재했다. 그 48시간의 기록이다.

▶베로나는 최적의 무대

22일 밤 8시 30분 베로나 포르타 누오바역 앞. 택시를 기다리면서 중년 남성과 대화를 나눴다. 그 시각에 택시를 타려는 유일한 동양인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비즈니스로 베로나에 온 거냐"고 묻던 그에게 "축구 때문에 왔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헬라스 베로나에 한국 선수가 한 명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 때문이겠구나"고 답했다. 그러면서 "어리고 미래가 밝은 선수라고 들었다. 기대해보겠다"고 했다. 유럽인들 특유의 '립서비스'성이 있기는 했다. 그래도 이승우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25분여를 달렸다. 베로나 포르타 노우바역에서 20㎞ 남짓을 달렸다. 하늘의 별들이 환하게 보이는 한적한 시골 동네에 도착했다. 이승우와 그의 가족이 사는 집이었다. 아직 정리가 덜 끝난 상태였다. 바르셀로나에서 살던 집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몇 차례나 이삿짐을 날라야한단다. 이제 베로나에 온지 2주밖에 안됐다.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마키아토 한잔을 두고 이승우 그리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눴다.

베로나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궁금했다. 이승우는 만족했다. 일단 세리에A에서 뛸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만 19세의 한국 선수가 세리에A에서 뛰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척 어렵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모두 비유럽국적(Non-EU) 선수에 대한 제한이 있다. 팀내 3명까지만 가능하다. 이 3자리를 놓고 유럽을 제외한 전세계 선수들이 경쟁한다. 구단들은 이 3자리에 대해 신중하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등 남미 선수들을 선호한다. 헬라스 베로나는 그런 중요한 자리에 한 명으로 이승우를 선택했다. 그만큼 이승우의 가능성을 높게 봤다. 또한 이승우 영입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뛸 수 있는 기회도 또 하나의 요소였다. 베로나는 승격팀이다. 다른 팀들에 비해 선수단이 두텁지 않다. 기회가 올 수 있는 가능성이 클 수 밖에 없다. 이승우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만큼 팀 선택에 고심을 거듭했다. 베로나야말로 현재 내게 딱 맞는 팀"이라고 했다.

▶기대 속 기다림

이적 시장 마지막날 베로나로 왔다. 그리고 2주가 흘렀다. 이승우는 3경기에서 벤치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계속 몸만 풀다가 들어갔다.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러자 주위에서 비아냥이 시작됐다. 이승우로서는 핸디캡을 안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5월 20세 이하 월드컵 이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베로나에서도 프리시즌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뛰지 못하자 주위에서 조바심을 냈다.

하지만 이승우는 침착했다. 어차피 당장 나가기가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이승우의 아버지 이영재씨는 "모든 일에는 순리라는 것이 있다. 기다리다보면 기회가 올 것이다. 이제 만19세다. 세리에A가 쉬운 무대는 아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다. 기다린다"고 말했다. 그래도 24일에 있을 라치오전에서는 기대하는 모습도 조금은 내비쳤다. 이승우는 "열심히 준비하겠다. 기회가 온다면 더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다.

▶117일만의 출전

다음날인 23일 이승우는 팀의 합숙에 들어갔다. 가족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24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24일. 결전의 날이 밝았다. 경기 시작 1시간전 가족들을 만났다. 이영재씨는 "물론 출전을 기대하는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마음을 비우고 있다"고 말했다. 선발 명단이 나왔다. 이승우는 벤치였다. 그래도 가족들은 웃었다.

경기가 시작됐다. 베로나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탈리아 대표인 치로 임모빌레의 원맨쇼에 속수무책이었다. 전반에 두 골을 내줬다. 후반들어서도 초반에 한 골을 더 허용했다. 후반 25분 이승우가 나섰다. 감독의 부름에 쏜살같이 달려갔다. 교체로 그라운드에 섰다. 117일만의 공식경기 출전이었다. 동시에 자신의 성인무대 데뷔이자 한국선수로서는 안정환 이후 두번째 세리에A 무대 등장이었다. 이승우는 통통 튀었다. 쉽게쉽게 볼을 찼다. 반박자 빠른 터치와 패스, 개인기로 베로나 공격에 힘을 불어넣었다. 슈팅도 하나 때렸다. 베로나 홈관중들은 이승우의 모습에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경기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다. 베로나는 0대3으로 졌다. 그래도 베로나 관중들은 이승우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승우는 박수로서 관중들에게 화답했다. 현지 언론들도 이승우에게 베로나 선수들 가운데 가장 높은 평점을 부여했다. 성공적인 데뷔였다.

▶데뷔에 행복, 이제부터가 시작

경기 후 믹스트존. 이승우는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선수들이 다 나가고, 취재진들까지 나간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도핑테스트를 받았다. 얼굴에는 데뷔전의 흥분이 아직도 배어있었다. 이승우는 "정신없는 데뷔전이었다. 그래도 정신없이 한 것 치고는 부상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2주일밖에 안됐는데 데뷔해서 기쁘고 행복하다"고 했다. 이어 "팀이 지고 있던 상황이라 분위기를 최대한 바꾸고 싶었다. 들어가서 공격적인 부분에서 돕고 싶었다. 공격포인트를 올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성인무대 첫 경험에 대해서는 "양 팀이 계속 왔다갔다해서 힘들기는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면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승우와 함께 경기장에서 나왔다. 가족들이 나와있었다. 서로 고생했다며 격려했다. 그리고는 오손도손한 모습으로 집으로 갔다. 집으로 향하는 이승우네의 차 위로 무지개가 떴다. 방금 막 비가 그쳤던 참이었다. 그 무지개 사이로 가는 차를 바라보며 이승우의 밝은 미래를 기대했다. 마르크 안토니오 벤테고디(이탈리아 베로나)=이 건 스포츠조선닷컴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