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물과 아랫물. '격'이 다르다.
K리그의 어제와 오늘도 그랬다. 2013년 스플릿 세상이 열린 뒤 클래식 무대는 둘로 갈라졌다. 33라운드까지 6위 이내에 포진한 팀들이 포함되는 그룹A는 K리그 클래식 왕좌 뿐만 아니라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출전권을 놓고 '우아한' 경쟁을 펼친다. 4위에 그쳐도 상위팀의 FA컵 제패라는 '운'만 따라주면 꿈의 아시아 무대 진출도 가능하다. 강등의 멍에를 피하기 위한 진흙탕 싸움이 펼쳐지는 그룹B 운명과는 천양지차다. 때문에 각 팀들은 그룹A행 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을 자부한다. 때문에 경계선상의 팀들은 사활을 건다. 매년 찾아오는 스플릿의 계절이 단풍처럼 붉게 타오르는 이유다. '성공'과 '실패'의 경계에 선 6, 7위 팀이 33라운드까지 펼치는 대혈투는 매년 우승 경쟁 못잖은 흥행카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2017년 스플릿 계절의 풍경은 다소 낮설다. 팀당 29경기를 치른 18일 현재 전북 현대(승점 60·1위), 제주(승점 54·2위), 울산 현대(승점 51·3위), 수원 삼성(승점 50·4위)까지 4팀이 그룹A행을 확정 지었다. 남은 두 자리에 FC서울(승점 43·5위)과 강원(승점 41·6위)이 포진해 있다. 중위권 그룹과의 승점차도 크다. 7위 포항은 승점 34로 강원과 7점 차다. 전남(승점 32·8위), 대구(승점 31·9위), 인천(승점 30·10위)은 더 멀다.
피말리는 경쟁이 펼쳐졌던 최근 3년간의 경쟁구도보다 긴장감이 현저히 떨어진다. 강팀들이 승점을 착실히 쌓은 반면 약팀들은 부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올해 유독 도드러지고 있는 모양새다.
이렇다보니 스플릿 경쟁도 '조기 파장'될 가능성이 커졌다. 당장 20일 전국 6개 도시서 열리는 클래식 30라운드에서 운명이 판가름 날 수도 있다. 5, 6위인 서울, 강원이 승리하고 7, 8위인 포항, 전남이 패한다면 남은 3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스플릿 그룹 A, B 각각 6팀이 결정된다.
최대 빅뱅은 포항-강원의 정면승부다. '명가' 포항은 2년 연속 그룹B행을 우려하고 있다. 스플릿 시행 원년인 2013년 우승을 비롯해 2014~2015년 연속 ACL 출전권을 따냈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반면 승격팀 강원은 올 시즌 최대 목표인 창단 첫 ACL 진출 달성의 가능성을 이어가기 위해 그룹A행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두 팀이 어떤 결과를 내느냐에 따라 5위 서울, 8위 전남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스플릿 조기 확정. 득보다 실이 많다. 개별 팀들 입장에선 재정비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일찌감치 스플릿 라운드에서 만날 팀들과의 맞대결에 화력을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 요소다. 하지만 리그 전체로 볼때는 손해다. 떨어지는 긴장감은 33라운드까지 일정을 남겨둔 선수단으로부터 의욕을 상실케 할 것이다. 흥행 및 수익도 하향곡선을 그린다는 점에서 결코 달가운 소식만은 아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