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축구판에서 이른바 '히딩크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이 과정에서 온라인 민심은 치열하게 들끓었다. 뜨거운 민심은 건전한 갑론을박이라기 보다 한쪽의 일방 공세에 가까웠다.
'히딩크 감독 복귀론'에 대해 적극 지지하지 않으면 (비난글의)'뭇매'를 맞아야 했다. 정치판에서나 등장하던 '적폐', 섬뜩한 꼬리표까지 달렸다.
진실공방도 가세하면서 판세는 더욱 사분오열됐다. 히딩크재단측과 대한축구협회의 엇갈린 주장이 불씨를 놓았다. 어느 한쪽 잘잘못을 따질 일이 못됐다.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모바일 메신저 문자로 툭 던진 히딩크측의 '가벼움'도 그렇지만 이에 대한 협회의 대응방식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도 일련의 진통 과정에서 확인된 공통점은 있다. '한국축구가 러시아월드컵에서 잘되기를'바라는 마음이다. 히딩크 감독을 적응 옹호한 대다수 축구팬들도 그런 마음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이제 머리를 잠깐 식혀볼 때다. 히딩크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이 한국축구에 득이 될지 냉철하게 짚어봐야 한다. 월드컵 본선까지 9개월. 대표팀 소집훈련 총 기간도 최대 80일도 안된다. 당장 10월초 유럽 원정 평가전이다.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기엔 너무 빠듯하다.
현재 확인된 팩트는 협회가 신태용 감독과의 계약을 지키고 그를 신임한다는 것과 히딩크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조력자(Advisor)'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팀 감독이라는 게 초등학교 반장 선거 하듯 인기투표로 뽑을 일도 아니다. 일각에서는 '신태용 감독의 용퇴론'까지 주장하지만 이 역시 정도가 아니다. 만약 신 감독이 용퇴를 선택해 아무리 포장한들 여론에 밀린 나머지 '자존심 상해서 못해먹겠다'다. 히딩크 역시 남의 감독 자리를 빼앗고 들어앉을 인품도 아니다.
더구나 이런 분열 상황이 장기화되는 것을 목격하며 월드컵을 준비해야 하는 태극전사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령관'이 지휘하지만 정작 전쟁에 뛰어드는 이는 '병사'다.
축구협회가 여론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정치꾼 집합소도 아니고 국민 여론을 명분으로 히딩크 감독으로 전격 교체한다면 어느 선수가 그런 조직을 신뢰하겠는가도 생각해봐야 한다.
모 아니면 도가 나올 수 없는 지금의 현실. 그렇다면 상생할 수 있는 최선책을 찾아야 한다. 한국축구가 잘되고자 한다면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신이 아닌 이상 현재 모든 가능성의 확률은 반반이다. 한국축구 미래를 위해 히딩크를 영입하자는 주장이 다수라지만 그것이 곧 월드컵 성공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신태용 감독으로 계속 밀고 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황당한 가정이지만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면 본선서 만날 상대팀이 우릴 봐준다거나, 우리 태극전사들의 없던 힘이 솟아난다거나, 하늘에서 판정을 도와준다거나 같은 보장이 있다면 월드컵에서의 성공을 위해 심각하게 고민할 수는 있다. 결국 히딩크든, 신태용이든 한국축구의 성공 가능성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히딩크라서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만큼 '그러면 국내 감독은 가능성이 무조건 낮아지는 것이냐'는 반론도 있게 마련이다.
결국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히딩크 감독 자신이 언급한 대로 순수한 조력자로 남는 것이다. 축구협회도 "표용하겠다"는 립서비스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신태용호가 성공할 수 있도록 히딩크 감독의 진정성을 활용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어떤 직책, 조직이든 한국축구의 미래를 위한 상생안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협회도 그간 노출한 과오에 대해 진정성있게 고개를 조아리고 미래를 추구해야 한다. 러시아월드컵에서의 결과에 대해서도 깨끗하게 책임질 각오도 다져야 한다.
한 K리그 지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한국축구가 히딩크 문제로 인해 대혼란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데 뒤에서 웃는 자는 누구일까요. 월드컵은 국제무대에서의 경쟁인데…."
이제 차가운 가슴으로 9개월을 시작할 때다. 누가 성의없었느니, 거짓말을 했느니 '네탓' 공방을 하기에는 한국축구에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
'히딩크 광풍'도 존중하지만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을 '온라인상 역적'으로 만들어 내쫓기 전 '갓틸리케'의 추억도 잊으면 안될 일이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