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현대는 명실상부한 K리그의 1강이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 역사를 쓴 '신태용호'에 전북 선수는 무려 6명(이동국, 김신욱, 이재성, 최철순, 김진수, 김민재)이었다. K리그 전북은 대표팀의 힘이었다.
#.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이 치러지던 지난달 31일, 최강희 전북 감독은 'K리그 대표'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엘리트 감독 포럼에 초청받았다. 파비오 카펠로, 안드레 비야스보야스 등 명장들이 '아시아 디펜딩 챔피언' 최 감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 지난 7일 전북 현대는 한국소비자브랜드 위원회 선정 '올해의 브랜드 대상 2017' 시상식에서 축구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브랜드 가치에서도 '1강'임을 입증했다.
'1강' 전북은 올시즌에도 리그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지난 2월, 이철근 전 단장 후임으로 전북 현대의 핸들을 잡은 지 7개월, '전주성'에서 마주한 백승권 단장은 '리딩클럽' 'K리그 1강'이라는 수사에 손사래부터 쳤다. "저희는 '리딩클럽'이라는 생각 안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주하게 됩니다."
▶현대차 31년 '원클럽맨', 전북 단장 7개월
백 단장은 전북 현대 축구단 역사상 입지전적 인물이다. 1986년 현대자동차 홍보팀에 입사한 후 무려 31년을 '원클럽' 홍보맨, 축구인으로 헌신했다. 1999년 전북 다이노스 시절, 실무 과장으로 일하며 모기업 현대차의 시스템을 축구단에 고스란히 이식했다. 2005년 구단 사무국장을 거쳐 2009년 부단장까지 올랐다. 2009년 가을, '10년 열정'을 바친 축구단을 떠나, 울산 현대자동차 홍보팀장으로 돌아갔다. 그해 가을, 전북은 리그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백 단장은 "숙소에서 TV중계로 우승 순간을 지켜봤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솟더라. 너무 좋아서 혼자 펄쩍펄쩍 뛰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8년간 백 단장은 팬심으로 전북의 폭풍성장을 응원했다. "1경기도 안빼고 실시간으로 모두 다 봤다"고 했다. 2017년 2월, 그가 다시 돌아왔다. 8년8개월만의 귀환이었다. 백 단장은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모든 것이 많이 달라졌다. 우선 구단의 위상이 너무나 높아졌다. 클럽하우스 등 인프라, 유소년 시스템도 체계적으로 갖춰졌다. 전북 16개 지역에 유소년들을 위한 보급반 '그린스쿨'을 운영중인데 회원이 1100명이다. 대기중인 아이들만 200명을 넘는다. 전임 이철근 단장님이 잘 만들어놓으셨다."
지난 7개월의 여정을 그는 '소규조수(蕭規曹隨)'라는 사자성어로 겸손하게 요약했다. '소하가 법을 만들었고, 조참이 그것을 잘 지켰다'는 한나라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전임 단장님이 잘 만들어놓으셨기 때문에 바꿀 일이 없었다. 큰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다. 다만 이 단장님이 갑작스레 떠나신 후 일련의 일들이 선수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분위기가 동요되지 않게 추스리는 일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전북의 오늘을 땀으로 일군 실무자이자, 최고의 팬이 구단 최고 경영자가 됐다. 팬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읽어낼 수 있는 밝은 눈과 현장 감각은 큰 자산이다. "지난 8년8개월간 순수하게 팬의 입장에서 바라봤다. 팬들은 어려운 걸 요구하지 않는다. 축구를 통한 기쁨과 감동을 원한다. 이기고도 찜찜한 경기보다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감동을 주는 가슴 뜨거운 플레이를 원한다."
▶K리그 1강 '전북의 힘'은 신뢰
백 단장이 말하는 '1강' 전북 현대의 힘은 신뢰다. "신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라고 했다. "현대차의 투자가 밑바탕이 된 상태에서 선수단의 끈끈한 신뢰가 형성됐다. 최강희 감독은 단일구단 최장수 감독이다. 최 감독이 선수들한테 믿음을 주고, 선수들은 감독을 신뢰한다. 이것이'1강'의 힘"이라고 말했다. "감독님을 위해 한번 해보자며 하나로 뭉친다. 축구단의 절반은 '분위기', '팀워크'다. '1강'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고 덧붙였다.
최 감독과의 호흡을 묻는 말에 백 단장이 이번에는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네 글자로 답했다. "말 그대로 긴 말이 필요없다. 눈빛만 봐도 안다"는 뜻. "2005년 사무국장 때 첫 인연을 맺었고, 그해 FA컵을 우승했다. 이듬해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다. 그 이전까지 전북 현대는 그만그만한 팀이었다. 그때도 구단 사정을 이야기하면 믿고 이해해주셨던 점이 감사하고 인상적이었다"며 웃었다. "최 감독은 좋은 사람이다. 믿음이 가는 사람이다. 나는 선수단 운영에 있어 100% 최 감독을 신뢰한다.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내가 할 일은 큰 방향에서 감독과 함께 상의하고 조율하고 10년 후 전북의 미래와 백년지대계를 수립하는 것"이라고 했다.
▶"서른아홉 이동국의 엄청난 가치"
전북은 베테랑 선수들의 능력을 가장 잘 활용하는 팀이다. 이동국, 에두, 조성환 등 30대 중후반 선수들이 김민재 장윤호 등 20대 초반 선수들과 그라운드에서 동등하게 경쟁한다. 백 단장은 '신구조화'라는 평가에 반색했다. "이동국 에두 조성환의 나이를 합치면 110살이다. 프로에서 적지 않은 나이지만, 이들은 칠흑같은 밤바다를 헤쳐나갈 때 '등대' '북극성' 같은 존재"라고 했다. "김민재, 장윤호 등 어린 선수들이 이 등대를 따라가며 팀의 윤활유 역할을 해준다"고 비유했다.
이동국과 에두의 내년 시즌 재계약에 대해 백 단장은 "본인들이 원한다면"이란 말로 긍정했다. 세월을 거스르는 '레전드 스타'들의 가치를 인정했다. "요코하마의 미우라 카즈는 쉰살이 넘었다.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가치가 대단하다. 전북 역시 이동국 선수를 보기 위해 오는 관중, 팬들이 정말 많다"고 했다. 천생 홍보맨인 백 단장은 K리그 최초의 70-70클럽, 200호골에 도전하는 이동국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동국의 골 하나, 도움 하나에 엄청난 뉴스 밸류가 있다. 구단 입장에서는 고마운 호재다. 기사 아이템을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이동국 그 자체가 빅뉴스다. 자신을 위해, 구단을 위해 대기록을 응원한다"며 웃었다.
▶"내년 아챔 대비 더블스쿼드 구상"
올해 여름 이적시장, 최근 몇년새 처음으로 '1강' 전북이 침묵했다. 이례적이었다. 백 단장은 단호했다. "투자는 돈을 써야할 곳에 써야 한다. 7월이니까 '무조건 쓴다'는, 경영의 원칙을 모르는 말"이라고 못박았다. "올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를 병행했다면 당연히 전력 보강을 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백 단장은 "내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를 위한 선수보강은 분명히 이뤄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현재 전력에 포지션별로 파괴력을 얹어갈 것이다. '더블스쿼드'를 만들겠다. 우리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안다"고 했다.
전북은 K리거들의 로망이다. 웬만한 영입으로는 큰 티도 나지 않는다. 대형선수 영입시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백 단장은 선수 영입에서 '포지션 밸런스'를 강조했다. "최 감독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다. 감독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포지션별 밸런스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위기가 깨진다."
▶"목표는 임기내 평균 관중 2만 명-재정자립도 50%"
'백전노장' 백 단장이 재임기간 전북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확고했다. "평균관중 2만 명, 재정자립도 50%"라는 명확한 수치를 내놨다. "현재 모기업 재정의존도가 65%쯤 된다. 1% 끌어내리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언제까지 모기업만 바라볼 것인가. 입장 수입, 로열티, 중계 수입 등을 통해 재정자립도를 50% 수준으로 맞춰놓아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라야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99년 전북 축구단에 처음 발을 내딛던 순간부터 백 단장이 집중해온 화두는 '관중'이다. "처음 구단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공짜표를 없애는 일이었다. 딱 3년 걸렸다"고 했다. "어린이에게 공짜표를 주자고 하는데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어릴 때부터 공짜심리, 축구는 공짜라는 인식을 심어줘서는 안된다. 당연히 표를 사서 관람하는 교육부터 해야 한다."
20년 일관된 노력은 결실을 맺고 있다. "전북은 이제 비가 와도 최소한 수천 명이 오는 팀이 됐다. 팬의 순도, 충성도가 강해졌다. 팬 문화, 팀 컬러가 만들어졌다"고 뿌듯해 했다. '안방극강' 전북의 경기력과 감독의 철학 역시 강력한 동력이 됐다. "우리 최 감독이 줄곧 강조해온 것이 절대 홈에서는 지지 말자는 것이다. 그것이 홈 팬들을 위한 가장 값진 보답이기 때문이다. 전북은 실제로 홈 승률이 높다"고 했다.
전주는 자타공인 '축도', 축구의 도시다. 20세 이하 월드컵에서도 전주월드컵경기장은 최다관중을 기록했다. 축구단이 도시의 문화를 바꿔놓았다. 서포터스뿐 아니라 일반 관중이 하나가 돼 '오오렐레~'를 합창하는 '전주성' 풍경은 아름답다. 지난 시즌 전북 평균관중은 1만6785명이다. FC서울(1만8007명)에 이어 2위다. 인구 대비로는 단연 1위다. 축구 열기에서 '인구 65만' 전주는 '인구 1000만' 서울에 뒤지지 않는다.
백 단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평균 관중 2만 명을 목표 삼았다. "평균관중이 2만 명이면 입장수익, 판매수익, 광고수익이 함께 올라간다. 중계권료도 올라간다. K리그 중계권료는 65억 원이다. J리그의 30분의 1, EPL의 300분의 1 수준이다. 부끄러운 현실"이라고 돌아봤다. "K리그 구단들은 관중을 늘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 많은 구단들이 이 기본을 등한시한다. 잘 안된다고만 하지 말고… '하려고 노력은 해봤나' 묻고 싶다. 내 임기 내에 전북 평균관중 2만 명을 꼭 채우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현대의 영문 이니셜이 'HD'다. '하면 된다'의 줄임말"이라며 웃었다. "현대맨 31년째, 전북맨 11년째다. 정말 '하니까 되더라.'"
'1강'이라는 말에 손사래 치던 전북 단장의 한마디는 뇌리에 남았다. "말에서 내리는 날, 몽골의 영화는 사라질 것이다." 징기즈칸의 명언을 언급했다. "안주하고 정착하는 순간 도태된다. 직원들에게 '항상 끊임없이 생각하라'고 한다. 생각하고, 실천하고, 변화하고, 혁신하고, 계속 발전해 나가야 한다. 계속 달려야 한다. 달리는 말에서 내려서는 안된다." 전주=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