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약자라는 생각으로 재무장하라."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의 금자탑을 이룬 한국축구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아시아 최종예선을 거치는 동안 험난한 길이었다. 앞으로 9개월 남은 기간 험로를 평탄로로 개척하는 게 '신태용호'에 주어진 과제다.
초심으로 돌아가 차분하게 다시 출발해야 하는 한국축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길을 물었다. 한국 월드컵 축구사의 대표적인 레전드이자 MBC 해설위원인 안정환(41)은 명쾌한 해법을 제시했다.
안정환은 자신의 경험과 축구 전문가의 식견을 살려 이른바 '꿀팁'같은 조언을 했다. 그의 일성은 "후배들이 '우리가 약자다'라는 생각을 갖고 다시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약한 팀이라고 진작에 기죽고 들어가란 소리가 아니다. '해볼 만하다', '어느 팀과 붙어도 자신있다'는 자신감도 중요하지만 지금 한국축구의 상황에서는 자신감이 과하면 현실을 직시하기 힘들다는 것,
안정환은 "월드컵 본선 진출팀은 각 대륙에서 엄선된 팀들이다. 우리도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강팀이라는데 방점을 두지 말고 어느 상대를 만나든 약자다라고 생각했을 때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는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성장하게 된다"면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배가되고 더 열심히 철저하게 준비했던 경험이 기억난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5월 국제축구연맹(FIFA) 20세이하월드컵을 앞두고 어린 후배들을 향해 "'(나의) 젊은 시절 더 간절하게 죽을 힘을 다해 더 열심히 뛰었으면 좋았을 것을…'하는 미련이 가시박힌 듯 남아 있다"며 "나처럼 후회하는 축구를 하지 말자"고 신신당부한 적이 있다. '약자'로서의 자세를 가졌을 때 죽을 힘을 다해 극복하고 싶은 열정을 쏟아낼 수 있다는 뜻과도 통하는 대목이다.
안정환은 빡빡한 방송 스케줄 속에서도 K리그, A매치 등 한국축구를 꼼꼼히 챙겨보고 있다. 그동안 아시아 최종예선을 거치는 과정을 보면서 "사실 답답한 게 좀 있었다"면서도 "과도기였기에 좋지 않은 모습이 나왔을 뿐 내년이면 바뀔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다"며 그간 겪은 아픔이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 기대감을 나타냈다.
사실 현재의 태극전사들은 그동안 축구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대선배 안정환에게 후배 태극전사들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지 '쓴소리'를 부탁했다.
"원팀(ONE TEAM)이 안된 것 같았다. 더 간절하게 뛰고 있다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
안정환은 "흘러간 옛날 꽃노래를 하자는 것도, 선배라서 다 잘했다는 게 아니다. 우리가 뛰었던 옛날보다 원팀이 안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부산하다고 할까…"라며 "누가 건드려도 흐트러지지 않는 원팀으로 똘똘 뭉쳤을 때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덧붙여 "후배들이 열심히 뛰지 않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도 그라운드에서 좀 더 절실하게 죽도록 쏟아붓는 장면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했다.
절친 선배 신태용 감독(48)을 향한 응원과 기대도 빼놓지 않았다. "최종예선서는 시간이 없었다. 이에 비하면 남은 9개월은 많다면 많은 시간이다"는 안정환은 전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미흡했던 사례를 들며 반면교사로 삼기를 기대했다.
"히딩크 감독 때도 그랬고 보통 외국 감독이 새로 오면 새로운 인재 몇명씩을 발굴해왔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스타, 흙속의 진주를 끄집어 냈는데 사실 슈틸리케 감독은 그걸 잘 못한 것 같다"면서 "신 감독이 슈틸리케 감독이 하지 못한 것을 보완하면 성공할 것이라 믿는다"고 당부했다.
안정환이 보기에 큰 맥락에서 한국축구의 걱정요인은 선수층이 얇아진 것이라고 한다. 그는 "쓸 수 있는 무기가 옛날보다 많이 없어진 것"이라고 비유했다. 이럴 수록 남은 몇개월 동안 숨어 있는 선수를 찾아다니고 발굴하기 위해 더욱 더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게 그가 제안한 해법이다.
안정환은 "신 감독은 뭐 하나 끄집어 낼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았지만 어떻게 보면 큰 판에서 제대로 검증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면서 "이제 주변에서도 한 번 믿고 맡긴 만큼 믿음과 격려를 보내주길 바란다. 그러면 신 감독은 분명히 잘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신 감독이 잘 해낼 것이라고 굳게 믿는 근거는 뭘까. 안정환의 마무리 해설은 명료했다. "신 감독님, 선수때부터 별명이 여우잖아요."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