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렛 필은 지난해까지 KIA 타이거즈 소속의 외국인 타자였다. 그의 직장은 여전히 KIA 타이거즈다. 하지만 업무가 달라졌다. 이제는 구단 소속 직원인 '필 스카우트'다.
1984년생으로 올해 만 33세인 필은 비교적 일찍 은퇴를 결심했다. 지난 겨울 KIA와 재계약에 실패했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어 스프링캠프에 참가했지만 녹록치 않았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다시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하려니 앞이 캄캄했다. 더군다나 이제는 책임져야 할 아내와 두 딸이 있는 가장이다. 그래서 아직 젊은 나이지만 은퇴를 택했다.
마침 타이밍이 잘 맞았다. 필이 KIA에서 뛴 3년동안, 구단이 그에 대해 좋은 인상과 평가를 하고 있었다. 성실하고 착한 성품에 워낙 습득력이 빠른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는 선수라 은퇴 후 기회가 된다면 계속해서 함께 일을 해보자는 제안을 하려던 참이었다. KIA가 현지 파견 스카우트가 필요하던 참에 필이 은퇴를 결정했고, 구단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스카우트로서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현재 스카우트팀에서 필은 '막내 사원'이다. 구단으로부터 보통 스카우트가 받는 수준의 비슷한 연봉을 받으면서 미국 현지에 체류하며 선수들을 관찰하는 것이 일이다. KIA 스카우트팀 관계자는 "머리가 좋은 친구라 그런지 일을 정말 빨리 습득한다. 리포트 쓰는 것도 처음 하면 다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워하는데 필은 금방 해낸다. 한국에 있을 때도 혼자 한글을 익혔었는데 영리한 것 같다"고 전했다. 성실함은 스카우트가 돼서도 변하지 않았다. 관계자는 "2주에 한번씩 리포트를 보내도 된다고 했는데, 1주일에 한번씩 보낸다"며 웃었다.
다행히 새로운 일이 적성에 맞는 모양이다. 필은 다른 선수들을 관찰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KIA 관계자들에게 "일이 재미있다"며 밝은 모습을 보였다.
한국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가 은퇴 후에도 계속해서 이전 소속 구단과 인연을 이어가는 것은 필이 처음은 아니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스카우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라이언 사도스키도 있고, 그 전에도 단기 스카우트 등으로 업무를 본 선수들이 있었다. 넥센 히어로즈의 브랜든 나이트 코치처럼 지도자로 돌아온 경우도 있다.
보통 외국인 선수 계약은 1년 단발성이 많고, 선수들도 불안한 신분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필이나 사도스키, 나이트 코치처럼 KBO리그에서 직접 경험했던 것들을 바탕삼아 다른 업무를 한다면 구단과 선수 모두에게 '윈윈'이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